[소설]오래된 정원 (77)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1분


하여튼간 속이 편허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 교감 선생 살었을 적에 오 선생이 그리 되고나서 모도 경을 치지 않었소안. 한 선생이 젤 먼저 광주로 잡혀 가고 우리도 읍에까지 나가서 조사 받었구만.

저 때문에 고생들 하셨습니다.

그래 갖고 이 참에도 내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드란 말이오. 생각혀 보니께 오 선생도 일 다 치고 나왔응께 벨일 있을라디야 허고는 내가 우리 망냉이 보러 신고하라고 일렀제.

잘하셨습니다. 실은 제 잘못이었어요. 제가 전화라도 한 통 해주는 건데.

하이고 그래 놓고 우리는 을매나 마음이 언짢한지. 가면서 그랍디다. 여그서 떠날 때 알려주기만 허면 벨일 없을 거이라고.

떠나는 날 제가 전화를 하지요.

이만해도 시상이 많이 좋아져부렀소. 전 같으먼 오너라 가너라 솔찬히 구찬케 헐것인디.

나는 얼김에 저녁 먹기를 끝냈다. 식후 연초라고 덤덤히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우리 한 선생이 여기 매년 와서 지내다 갔나요?

하이고 매년이 다 뭐라요. 방학이 되먼 여름 겨울 몇 달을 거그서 살다 갔지라. 오 선생 기다린다고 시집도 못가고 잉. 아니, 그렁께 팔팔 올림픽 나던 해부터 몇년 걸렀는갑소. 잉 그려, 한 오년 못왔던개벼. 우리 앞으루 독일서 간혹 뜬금없이 그림 엽서가 왔지라. 한 선생 즈그 동상되는 이 덱고 왔을 때가 첨으로 다시 왔을 적이고. 그라고 거그 집을 샀고요.

순천댁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투박한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찍어냈다.

구십 육 년도 여름인가 온 게 끝이어라우. 갈라고 맴이 동혔는지 느닷웁시 그 해 여름에 여글 와서 집을 싹 고쳤다니께. 몸이 어디가 아프다고는 들었는디 그렇게 쉽게….

나도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순천댁의 푸념을 들었다. 그네는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내가 머라고 했지라. 그 까짓 흔 오막 우리를 멋땜시 돈 들여 고치느냐고, 싹 헐어불고 새로 짓는 거이 낫것다고 속도 웁시 말했지라. 그렷더니 한 선생 말 좀 보소. 이 담에 현우씨가 찾아오먼 몰라볼 게 아니냐고 그럽디다. 우리네야 어찌 알것소, 그 깊은 속을.

나는 말없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순천댁의 말을 자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을 신느라고 마루에서 꾸물대는데 그네가 등 뒤에서 말을 이었다.

그라고 아까 보니께 가스도 들이고 살림 장만을 하든디… 우리는 구찬을 것도 웁고 그냥 수저만 한나 더 올려놓으먼 되니께 내레와 밥 묵소.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깜박 잊었군요. 실은 이것저것 책도 읽고 정리할 일도 있어서 생활이 불규칙해요. 자취를 하려고 합니다. 혼자 해먹구 싶은 것두 많구요.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아랫집 울타리를 빠져 나왔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데 이젠 밤 바람이 훨씬 포근해졌다. 방에서 보다는 갈뫼가 그렇게 고즈넉하지는 않았다. 가늘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팝송 소리가 쿵작쿵작 들려왔다. 과수원의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어구에 있는 가든의 붉은 네온 불빛이 깜박이는 게 보였다. 그래 지나간 것들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 조차도 왜곡되어 버린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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