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살리기 풍수여행 ①]경기 여주 신륵사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살아남은 자와 실직한 자가 함께 아파하는 시대. 직장이나 가정에서 기(氣)가 살아야 한다. 풍수지리를 100%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시대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다면 나름의 가치는 있을 듯. ‘기(氣) 살리기 풍수여행’을 시작한다.》

“자식, 정말 돈 번다니까….”

음악학원강사인 정승훈씨(30)가 고교시절 단짝이던 김용훈씨(31·중소기업 대리)를 보채어 찾아간 곳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신륵사(神勒寺). 줄어드는 수강생에 고민하던 정씨가 “이런 때일수록 과감히 제치자”며 김씨의 팔을 끌었다.

강기슭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정자에 앉아 있으니 양옆과 뒤에는 거친 바람을 막아 주는 봉미산이요, 눈앞엔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하게 흘러가는 남한강이라. 약속이나 한듯 한마디씩.

“다 때려치우고 이런 데서나 살까….”

이곳의 형상은 봉황포란형(鳳凰胞卵形). 봉황새가 양날개를 쭉 뻗어 소중한 알을 품고 있는 모양. 좌청룡 우백호 두 산줄기가 아기를 보듬는 어머니처럼 좌우를 감싸들고 그 사이로 힘차게 뻗어내리던 주산(主山)은 남한강가에 이르러 ‘뚝’ 멈춰섰으니, 돌진하던 봉황의 머리가 강(水)을 만나 정지한 장소는 지기(地氣)가 물을 지나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응집한 곳이니 말로만 듣던 명당.

더욱이 산의 꼭대기는 ‘귀(貴·벼슬)’, 허리는 ‘손(孫·후손)’, 아래 물기슭은 ‘부(富)’로 보는 풍수설이고 보면 아무리 돌고 도는 게 ‘돈’이지만 물기슭 바로 ‘알’자리에 자리잡은 이곳에 ‘탁’걸리면 절대 수월히 흘러나가지 않을 상이라….

“마누라 얼굴도 명당같이 고치면 돈이 그냥 굴러들어올텐데….”

“넌 풍수도 모르냐? 안건드리는 게 최고야, 임마.”

발길을 돌린 두사람. 20㎞를 15분 남짓 차로 달리니 경기 이천의 ‘미란다호텔’. 볼록 올라온 분지형 평지는 그 끝이 아스라할 정도로 넓디넓고 저멀리 오밀조밀한 원적산이 병풍처럼 둥그렇게 둘러싼 곳.

금반형지(金盤形地), 금으로 된 쟁반모양의 땅이라. 예부터 이곳에 오면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서 외부인의 이주가 속출했고 ‘36명의 대장군과 정승이 난다’는 예언이 전해오는 곳. 그래서일까, ‘장군’은 못돼도 힘깨나 썼던 씨름장사 이정재와 돌주먹 유지광의 고향도 이곳.

살균성분이 강하다는 나트륨온천.

노천탕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어둑어둑, 벌써 오후 6시. 이천 하면 쌀, 온천을 나서서 이천 쌀밥집 ‘토사랑’을 찾았다. 사거리 한모퉁이 완만한 언덕빼기에 있어 동쪽이 확 트이고 서쪽과 남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상추쌈을 한입 가득 넣으며 얼마전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 했다 대기업을 그만뒀다는 동창 얘기를 꺼내는 김씨.

“요즘같은 세상엔 소처럼 납작 엎드려 사는 게 최고야.”

“맞아, 물을 만나면 딱 멈춰서는 봉미산처럼 말이지?”

〈여주·이천〓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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