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MF시대의 아이들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가 학교측이 마련한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돌아오는 학생이 급속히 늘고 있다. 50, 60년대 상당수 학생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못 싸오던 학교풍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가장의 실직이나 생활고에 따른 가정파탄으로 졸지에 소년소녀가장이 된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어른들 잘못으로 초래된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죄없는 어린이들까지 직접적인 피해자로 만들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교육부가 파악한 전국 초중고교의 결식학생 숫자는 5만명을 넘어섰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가계소득이 높은 서울에서도 결식학생이 지난해보다 67.5%나 늘어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이나 마음의 상처는 그래도 부모없이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에 비하면 나은 편일지 모른다.

어린이들의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모들이 실직 등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얼마전 TV에 방영된 아동폭력 사례는 비록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가족동반 자살사건도 어린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그러잖아도 아동복지나 아동인권 측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린이를 개별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또 이혼풍속에 익숙지 않은 탓에 편부모 상태나 혼자 남게 된 자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크게 부족하다. 유엔 산하 ‘어린이 청소년 권리위원회’는 96년 한국내 아동인권에 대해 ‘부모에 의해 양육될 권리’ ‘청소년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권리’가 미흡하다고 보고 개선권고안을 내기도 했으나 별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IMF사태는 어린이들에게 더욱 큰 몫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정부의 적절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결식학생에 대해서는 학교 차원보다는 형편이 나은 이웃이 자원해서 도시락을 제공한다거나 소년소녀가장의 경우 금전적 지원에 치중하지 말고 선진국의 가정위탁제도처럼 계속 가정의 울타리안에 있도록 배려해 주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려운 시기에도 어린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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