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日끌려간 도공후예 심수관씨/『전시회 감개무량』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조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지 올해로 4백년.

한(恨)과 망향의 세월에 이들과 그 후예들이 빚어낸 도자기는‘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뿌리를 내렸다.

그 종가(宗家)격인 심씨 가문의 14대손 심수관(沈壽官)씨가 잠시 고국을 찾아 지난달 29일 동아일보사를 방문했다. 72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이다.

심씨는 7월6일∼8월10일 동아일보사 주최로 가문 역대의 도자기 명품들을 서울 세종로 일민(一民)미술관에서 특별전시하기로 김병관(金炳琯)본사회장과 합의했다. 일민은 고 김상만(金相万)본사명예회장의 아호.

―서울 전시회를 갖게 된 감회가 적지 않겠지요.

“감개무량합니다. 선조가 처음 일본 땅을 밟은 뒤 4백년간 심가(沈家) 14대에 걸쳐 쌓은 도예 기술의 전통을, 그리고 그 작품들에 스며든 우리의 삶을 고국민 앞에 선보이게 되어 가슴이 벅찹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인류의 치욕이요, 의미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 비극 속에서 조선의 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어 이국 풍토 속에서 모양을 바꾸어 4백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역대 심수관 보고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보고하고 고국민들의 칭찬도 받고 싶습니다. 선조들의 뒤를 응시하다보면 멀리 한국이 보이고 그 뒤에는 아시아가 있음을 늘 느껴왔습니다.”

심씨는 “고국 보고전의 성사를 약속해준 김회장님과 한국에 감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어떤 작품들을 보여주실 계획입니까.

“선조들이 만든 도자기는 대부분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 번주(藩主·영주)를 통해 장군가(將軍家)와 다이묘(大名·대영주)들에게 바쳐졌습니다. 극히 일부만이 심가 수장고에 보존되어 왔습니다.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문외불출(門外不出)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백40여점을 이번에 한국에서 특별공개하려는 것입니다. 흠진 곳이나 금간 곳이 있는 작품도 섞여 있지만 수집가들이 돈과 권력으로 사모은 것들과는 다릅니다. 심가의 역사와 로망이 응축된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일본에 끌려간 심씨 1대 심당길(沈當吉)이 빚은 ‘불만(히바카리)’이라는 작품명의 찻잔. ‘가마의 불(火)만 일본 것이고 흙과 유약 등 나머지는 모두 조선에서 가져간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심씨 가문의 작품 이외에도 출품작이 있습니까.

“심수관 요(窯)가 있는 가고시마현 히가시이치기초(東市來町)에서는 심가 이외에도 10여 가문의 도공 후예들이 함께 도자기를 빚고 있습니다. 무명이긴 하지만 이들도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내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주최측인 동아일보사의 양해를 얻어 이들의 작품도 각각 2점씩 20여점 출품했으면 합니다.”

그의 명함에는 ‘98 사쓰마야키(薩摩燒) 4백년제를 성공시키자’는 글귀가 인쇄되어 있다.

정유재란 중이던 1598년 전북 남원성(南原城)에서 사쓰마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끌려간 남녀 80여명의 도공과 그 후예들이 빚어낸 도자기가 곧 사쓰마야키(사쓰마 도자기).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와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출품, 절찬을 받으면서 ‘사쓰마웨어’라는 ‘브랜드’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가고시마현은 10∼11월 사쓰마도자기 4백년 기념제를 대대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심씨는 “이번 서울전은 일본에서의 다양한 행사에 앞서 열려 4백년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뜻이 깊다”고 자평했다.

―한국도자기 일본전래 4백년 기념행사 이후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사쓰마도 자기의 영광은 심가 12대인 조부가 도자기를 만들던 19세기 후반에 꽃피었습니다.그뒤 일본이 침략을 거듭하면서 가고시마지역과 사쓰마도자기가 함께 쇠퇴한 감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우리 도자기의영광을 부활시키는데 여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그는 부인, 장남부부, 손자 셋과 함께 살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내 다음에는 장남이 15대 심수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씨 가문은 12대 때부터 ‘수관’을 세습명으로 쓰고 있다.

“내가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와 가업으로 돌아갔듯이 장남도 와세다대 지리역사학과를 나왔지만 이탈리아의 도예대학에서 수학하고 90년에는 한국의 옹기 만드는 집에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심씨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한국에는 몇대를 이어가는 도예 가문이 드뭅니다. 대부분 당대에서 끝나지요. 한국 나름의 풍토가 있겠지만 왜 그렇게 중단되는지 아쉽습니다. 몇대를 계속하면 여러가지 지혜가 쌓이지요.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도 4백년간 축적해온 우리의 도기(陶技)와 삶의 방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담:배인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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