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이도성/박양실과 주양자파문

  • 입력 1998년 4월 29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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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고는 너무나 통탄할 우연이다. 김영삼(YS) 정부 출범 초기에 온 나라를 분노와 허탈 속에 몰아넣었던 비리 각료 파문이 일어났을 때 그처럼 기막힌 우(愚)가 5년 후 다시 벌어지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93년3월 YS정부 초대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임명됐다가 10여일만에 낙마한 박양실씨와 이번에 온갖 물의끝에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물러난 주양자씨 얘기다.

두 사람은 우선 정권초기 조각 때 여성 발탁 케이스로, 그것도 같은 부서에 입각한 인물들. 그리고 입각하자마자 공직자 재산공개 때 부동산투기 등 부도덕한 수법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것이 들통나 세인들의 손가락질 속에 장관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점에서 걸어온 길이 같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비리 각료 파문은 그들에게 궁극적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내 돈 갖고 재산 좀 늘리기 위해 목좋은 곳에 땅을 샀기로서니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는 그들의 항변대로 사인(私人)들 사이에선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될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인물들이 공인(公人)으로서 최고의 영예이자 민생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장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권력구조와 잘못된 제도다.

따라서 이번 주씨 파문의 전개과정을 보는 관점의 핵심도 당연히 주씨가 보인 반응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상황대처 자세와 문제접근 방식이 돼야 한다. 이 대목에서 입각 대상자들의 재산형성과정 등 문제점들을 사전에 알았느냐 몰랐느냐의 여부는 면책사유가 될 수 없다. 만약 ‘몰랐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통할 수 있다면 최근 쟁점이 돼있는 이른바 환란(換亂)책임 공방의 논리구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태생이 다른 두 정파간 공동정권 운영과정에서 파생된 시행착오라든지, 장관재임기간이 짧지 않았느냐는 변명도 면책사유가 되기 힘들다. 설령 지난 대선결과가 DJP 공동정권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해도 이해의 도를 넘는 시행착오까지를 포괄하는 지지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지나친 오만이다. 또 단 하루, 털끝만큼이라도 민생에 주름살이 가게 했어도 겸허하게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집권세력으로서의 옳은 자세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금까지 진행돼온 주씨 파문의 전개과정에서 ‘국민의 정부’라는 기치를 내세운 여권의 행태로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3월초부터 불거진 문제를 두달 가까이 끌어왔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 대목을 두고 YS정부 출범초기, 문제가 불거지자 사흘만에 박씨를 물러나게 한 전례와 비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구나 보기 딱한 일은 자민련 전국구 예비후보인 주씨를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에서 또다른 추문까지 회자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회의가 보인 태도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민회의가 내보인 공식반응은 “주장관의 사퇴는 개혁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국민정부의 방침과 일치하는 공인의 도덕률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직자는 재산형성의 투명성을 감시받는 시대가 왔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수석부대변인 논평(28일)이 전부다. 누가 봐도 ‘남의 일’ 얘기하듯 한 이 논평이 국정을 책임진다는 제1여당의 공식입장이라니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실질적인 제청자인 김종필총리서리와 임명권자인 김대중대통령의 자세다. 경위야 어찌됐든 주씨 파문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집권세력의 수뇌들로서 보여줘야 할 자세는 그리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분명하다. 겸허하게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재발방지 다짐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지 않아도 고달프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심화(心火)를 추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이도성<뉴스플러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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