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50돌]「2천년고난」딛고 중동 富國으로

  • 입력 1998년 4월 29일 19시 40분


2천년간의 유랑생활, 2차대전중 나치 독일에 의한 ‘대학살’, 아랍국들과의 숱한 전쟁 등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이스라엘이 30일(유태력 8월5일) 건국 50주년을 맞았다.

건국 당시 인구 65만명의 소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인구 5백70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7천달러의 부국이자 50만명의 병력과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으로 성장했다.

▼건국〓중동을 지배권에 두고 있던 영국은 1917년 팔레스타인지역을 이스라엘의 모국으로 한다는 구상을 담은 ‘발포어 선언’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엄청난 희생은 유태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였고 세계 각지의 유태인들을 ‘시오니스트 국가’ 건설의 의지 아래 뭉치게 했기 때문이다.

1948년 영국의 주도하에 팔레스타인에 유태국과 아랍국을 분할한다는 유엔의 결의안이 표결로 채택됐고 아랍국들의 반대로속에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언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스라엘은 이웃 아랍국들과 6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건국 당시의 영토를 3배로 확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건국한 ‘원죄’때문에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숙명처럼 계속되고 있다.

64년 창설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독립운동을 펼쳐왔으며 9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돼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벌이면서 99년중 국가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전망〓이스라엘은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기술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전자의료기기 생명공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강하고 전망도 밝다.

그러나 다양한 출신의 이민에 따른 국민분열과 세대격차, 빈부 격차, 정치적 종교적 갈등 등으로 사회는 심각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93년 팔레스타인측과 오슬로협정을 체결해 무르익었던 평화무드는 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총리의 암살과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집권으로 다시 얼어붙었다.

지난 50년간 이웃한 ‘골리앗’ 국가들 사이에서 ‘다윗’처럼 생존해온 이스라엘의 번영은 ‘20세기의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빼앗은 영토를 내놓지 않는 한 반목 대립 테러의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정성희기자〉 ◇ 이스라엘 일지

▼1882년〓유태인,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 시작

▼1917년〓영국, 팔레스타인거주 유태인의 고국 개념 인정하는 발포어 선언

▼1947년〓유엔, 팔레스타인지역을 유태국과 아랍국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표결

▼1948년(유태력 8월5일, 금년은 4월30일)〓이스라엘국 선포. 51년까지 아랍국과 독립전쟁(1차중동전)

▼1964년〓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창설

▼1967년〓6일 전쟁(2차중동전). 요르단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이집트 시나이반도, 시리아 골란고원 점령.

▼1973년〓3차중동전(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 공격)

▼1979년〓이집트와 평화조약 체결, 시나이반도 반환

▼1982년〓레바논 침공. PLO 축출

▼1993년〓이스라엘―PLO, 오슬로협정 서명

▼1994년〓요르단과 평화조약 체결

▼1995년〓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피살

▼1996년〓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집권

▼1997년∼현재〓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평화협상 계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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