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유순옥/『보약한첩 못올려 죄송합니다』

  • 입력 1998년 4월 29일 08시 27분


어머니 세월 참 빠르네요. 어느덧 제 나이 육십이에요. 육남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손자 손녀 재롱까지 보니까요. 이제서야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오신 당신이 눈에 선합니다.

요즘 산과 들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젊은 나이에 혼자서 동생과 저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팔십 평생을 고생만 하고 살아오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멥니다.

지금도 외로우신 어머니. 열다섯에 시작된 층층시하 시집살이 가난한 살림에 어머니는 쉴 틈이 없었죠. 날마다 정성껏 풀을 먹여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동생 시누이 옷을 다림질하고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술드시고 그 옷을 다 버리고와도 긴밤 꼬박 새우며 다시 지어 드리고 해뜨기전에 해장술국까지 끓였어요.

날마다 끼니 걱정 땔감 걱정에 콩나물 두부장사, 삯바느질 품팔이를 가리지 않고 손수 나무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런 당신에게 콩나물장사 딸이 창피해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고 속을 썩였던 것 정말 죄송해요.각박한 세상에서 육남매 데리고 늘 쪼들리며 살다 보니 맛있는 음식, 좋은 옷 한벌, 보약 한첩을 제대로 해 드리지 못하고 마음만 아파하는 주변머리 없는 딸자식을 용서하세요. 팔십 평생을 마음의 상처와 한숨속에 살아온 당신께 무슨 위안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매운 시집살이에도 자신을 희생하고 동생과 저를, 아니 우리 집안을 지켜준 그 거룩한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 정말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도 어머니를 본받아 열심히 살며 이제부터라도 효도할테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다가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과 곰국거리 사들고 어머니께 큰 절 올리러 갈게요.

유순옥(경기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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