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 (709)

  • 입력 1998년 4월 29일 08시 27분


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5〉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혼자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라파트 산까지 가 다시 사원을 찾아든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기절초풍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과 그저께 밤에 만났던 그 문둥이 사내를 또 다시 만났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거기에 도착한 듯 단정한 자세를 하고 앉아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자 급기야 나는 그에게 몸을 던지고 그의 발에 입맞추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발 나를 데리고 가주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상대는 말했습니다.

“그건 안될 말이오. 당신은 누구이고 동행하는 건 질색이잖소.”

그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벗을 잃은 슬픔에 울어야 했고, 그러한 나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공연한 눈물 흘리지 마오!”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역참에 도착할 때마다 그 사내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와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마침내 나는 알 메디나에 도착하였습니다만, 거기서부터는 그 사나이를 볼 수 없었습니다. 막상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견딜 수 없이 서운했습니다.

알 메디나에서는 아부 야지드 알 부스타미며 아부 바크르 알스히부리 등 많은 장로파 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내가 만난 문둥이 사내와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털어놓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난 그들은 몹시 놀라워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먼저 그분과 동행할 것을 거절해놓고, 나중에서야 동행하자고 청했으니, 그가 거절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건 그렇고, 그분이 대체 누군지 알기나 하시오? 그분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아부 자아파르라는 분인데, 세상 사람들은 늘 그 이름을 외면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답니다. 그분의 축복과 기도 덕분에 언제나 기원이 이루어지곤 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나는 함께 동행하자고 했던 그 사내의 청을 거절했던 것을 더욱 더 후회하면서, 부디 한번만 더 그분을 만나게 해주십사고 전능하신 알라께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내가 아라파트 산 꼭대기에서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뒤에서 누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돌아보니,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그 문둥이 사내가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너무나도 뜻밖의 재회에 나는 소리높여 부르짖으며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를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더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순례의 여러가지 절차도 귀찮아졌습니다. 나는 그저 그와의 재회를 전능하신 알라께 빌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삼일 뒤, 뜻밖에도 누군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았는데 역시 그 사내였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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