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MIT교수『아시아경제 회복…미국은 침체될것』

  • 입력 1998년 4월 28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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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대 폴 크루그만교수(45)는 언제나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아시아경제가 끝없이 번창할 것으로 여겨졌던 94년 미국의 권위있는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에 아시아경제의 하강을 예견한 ‘아시아 경제기적의 신화’라는 논문을 기고,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포린 어페어즈 최근호에서는 미국 경제의 하강과 아시아 경제의 상승을 주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크루그만교수는 24세에 MIT에서 국제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예일과 스탠퍼드대를 거쳐 모교인 MIT로 돌아오기까지 16권의 저서를 통해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접근방식으로 까다로운 경제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 뉴스위크지로부터 ‘위대한 폭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2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먼저 자신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예견했다는 평가부터 부정했다.

“단지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지체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 현재의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다. 임박한 위기를 점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아시아에서 통화위기가 나타나고 심지어 시티뱅크가 상환기간을 단축하고 있을 때조차도 이같은 대재난이 일어날지 예상치 못했다. 나도 90%쯤 틀렸다. 아시아의 급성장이 영원하리라고 믿은 다른 사람들이 150% 틀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확해보인 것뿐이다. 앞으로 뭐가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아시아 경제회복을 전망한 근거는….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재정과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폭발한 것일 뿐 실제 아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아시아국가들은 그들이 범한 잘못보다 훨씬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성장을 회복할 만한 잠재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재정과 금융부문에서 개혁이 이뤄진다면 다시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당신은 아시아적 가치가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한 원인으로 보는가.

“아시아의 위기는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위기와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97년 한국의 위기는 91년 칠레가 겪은 것과 유사하다. 민간은행들의 부채를 정부가 지불보증하면서도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면밀한 감독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아시아적 가치를 이번 위기에 연결시키는 것은 경제회복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낳을 뿐이다.”

―족벌주의나 정실주의를 아시아적 가치로 보고 이것들이 경제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물론 족벌주의나 정실주의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금융부문에 이같은 영향이 미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아시아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가. 19세기말 미국에도 이같은 문제가 있었고 남미에서도 유사한 배경으로 위기가 빈발했다. 부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사회나 있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이 걸어온 길을 밟아야 하는가. 서구화가 세계의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실제 서구사회의 문화나 가치와 큰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를 하려면 자본주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 서구의 가치관을 본뜨라는 얘기는 아니다. 법의 지배나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해관계 분리 등은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일 뿐 서구고유의 문화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은 아시아국가들과 다른 문제점과 다른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물론 다르다.한국은 훨씬 발전돼 있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측면에서도 대통령의 친인척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비교해 보라. 한국에서는 도덕적 해이의 정도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이때문에 재정이나 금융개혁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개혁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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