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충무공정신의 계승

  • 입력 1998년 4월 28일 19시 57분


1931년 5월14일자 동아일보의 사설 ‘민족적수치(民族的羞恥)’는 본보가 민족지임을 공인받는 명사설 중의 하나로 꼽힌다. 충남 아산의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장군 묘위토(墓位土)가 후손이 진 빚 탓으로 경매 위기에 놓인 것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펼친 ‘이충무공 유적보존운동’의 시발이 됐기 때문이다. 일제(日帝) 억압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한민족의 영웅을 현창하는 사업이야말로 용기있는 민족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위토뿐만 아니라 묘소 사당 종가 등이 퇴락일로에 있도록 무관심한 것을 민족적 수치로 지적한 사설은 나라 잃은 백성들 사이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만4천원 가까운 헌금이 답지해 빚 2천3백원을 갚는 것은 물론 현충사를 중건할 수 있었다. 본보 전속의 이상범(李象範)화백이 그린 충무공 영정을 현충사에 봉안할 때는 3만여 인파가 모여 그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이 충무공 순국 4백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453회 탄신일인 28일 아산 신정호수 옆에 공(公)의 동상건립을 위한 기공식이 있었다. 순국일인 12월16일에 모습을 드러낼 동상을 비롯해 노량해전재현 오페라공연 등 4백주년 기념사업은 정부와 함께 벌이는 올해 본보의 10대 사업 중 하나다. 나라 잃은 민족에게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일제하에서도 펼쳤던 민족지로서의 맥을 잇는 사업인 것이다.

▼4백주년 기념사업은 충무공의 고귀한 나라사랑을 기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IMF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는 국난극복을 다짐하는 또한번의 계기가 될 것이다.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 죽는 순간까지도 나라를 생각했던 충무공정신만큼 IMF사태 속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없다.

임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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