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45]안기부의 사조직화

  • 입력 1998년 4월 28일 19시 34분


96년 12월 말 안기부 청사 1차장실.

며칠 전인 12월20일 국가보훈처장으로 자리를 옮긴 오정소(吳正昭)1차장의 사무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문건 하나가 발견됐다.

김광일(金光一)청와대비서실장과 당시 신한국당 중진의원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정리한 녹취록이었다. 녹취록 발견은 안기부 고위간부를 통해 김실장의 귀에 들어갔다.

김실장은 이미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서실 간부들에게 “도청당하고 있다.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여러차례 말했던 터였다.

김실장은 오차장이 도청을 지시했다면 이는 필시 오차장과 경복고 고려대 선후배 사이인 이원종(李源宗)정무수석과 김현철(金賢哲)씨에게 도청내용이 보고됐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녹취록은 한마디로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김실장과 이수석, 보다 넓게는 권력 핵심부의 경남고와 경복고 인맥이 벌인 치열한 파워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었다.

당시 김실장은 ‘대학 동창회에서 정보를 얻어야 했을 정도’로 안기부의 정보루트가 차단된 상태였다. 오차장이 있는 한 김실장으로서는 안기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연말개각에서 오차장은 장관급인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됐다. 명목상으로는 영전이었지만 오차장은 한마디로 깨끗하게 ‘물’을 먹은 셈이었다.

▼ 학맥간 파워게임 치열 ▼

김실장의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 후배인 박일룡(朴一龍)씨가 오차장의 후임으로 기용된 것은 이 인사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안기부 간부의 설명.

“오차장은 인사가 있던 날 아침까지 자신이 유임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원종수석이나 현철씨한테서 경질에 대한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으니까요. 오차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1차장직에 계속 남아있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평소 이수석과 현철씨에게 밀착하는 오차장의 행태에 불만을 갖고 있던 경남고 인맥이 총동원돼 오차장을 밀어낸 겁니다. 당시 김실장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K변호사에게 전화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압니다.”

오차장은 자신이 안기부를 떠난 배경에 김실장과 K변호사가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K변호사의 얘기는 달랐다. 그는 “이철승(李哲承)씨에게서 오차장 얘기를 여러번 듣고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제 식사라도 한번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오차장의 경질을 건의했다니…. 그리고 김실장도 자기가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전화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겠어요.”

K변호사의 부인에 대해 오차장과 가까운 안기부 중견간부는 “우리가 김실장과 K변호사의 통화 녹취록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실장과 K변호사가 안기부 차장 인사에 개입한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간부는 두 사람의 전화 도청사실을 시인해버렸다.

안기부 도청에 대한 공포는 비단 김실장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96년 12월 어느날 서울 종로구 인사동 S한정식집에서 이회창(李會昌)고문을 지지하기 위한 신한국당 7인방의 최초 회합이 은밀히 열렸다.

참석자들은 후일 이고문이 대통령후보가 될 때까지 ‘머리’와 ‘손발’이 됐던 핵심 측근 중의 측근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회합내용은 하루가 못가 현철씨의 귀에 들어갔다. 한 참석자의 증언.

“모임이 있었던 다음날 현철씨가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참석자에게 전화를 했어요.‘좀 더 있다가 상황을 보고 (결정)하시죠. 뭘 벌써 이회창씨를 돕느라 서두르십니까’라고 말하더란 겁니다. 현철씨는 우리 대화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알고 있었지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도청된 것이 분명했지요. 이 일로 모의원은 얼굴이 사색이 됐고, 또 다른 의원은 이 모임에서 아예 발을 뺐습니다.”

김영삼정부 들어 안기부는 야권은 물론 여권 핵심부 인사들까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현철씨 문제의 해결을 김대통령에게 건의했거나 하다못해 개인적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지 않은 ‘뻣뻣한’ 인물들은 거의 예외없이 감시대상에 올랐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철씨와 안기부가 이처럼 밀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안기부 수뇌부와 현철씨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오차장과 현철씨는 고교 대학 선후배 사이. 두 사람의 관계는 김영삼전대통령의 야당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오차장은 각종 시위로 경찰서에 끌려간 현철씨의 든든한 ‘백’이 돼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김대통령의 집권으로 더욱 끈끈해졌다. 오차장이 김대통령 집권 이후 몇단계나 고속 승진한 것도 현철씨와의 특수관계라는 사실을 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원종정무수석은 현철씨와 함께 오차장의 후견인이 돼 주었다.

김기섭(金己燮)차장과 현철씨의 관계는 더이상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 신라호텔상무 출신인 김차장이 안기부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현철씨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차장은 자신의 힘이 현철씨에게서 발원(發源)했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안기부 한 간부의 설명.

“김차장은 현철씨를 쫓아다니며 술을 자주 샀지요. 그런데 이 사실을 김대통령이 알았어요. 김대통령은 두번씩이나 김차장을 불러 ‘어린애에게 왜 술을 먹이느냐’고 혼을 낸 적이 있습니다.”

권영해(權寧海)전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권전부장은 93년12월 포탄도입사기사건의 유탄을 맞고 도중하차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당시 김덕(金悳)안기부장은 권전장관의 불운한 신세를 감안,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직을 김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안기부 한 고위간부의 증언.

“하루는 김부장이 권전장관을 배려해야겠는데 무슨 자리가 좋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생각 끝에 KBO 총재가 어떻겠느냐고 추천했죠. 김부장은 주례보고 자리에서 김대통령에게 권장관에 대한 배려를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 사람은 나를 속였어’라고 말했다더군요. 김대통령이 두차례나 건의를 묵살하자 김부장이 현철씨를 통해 권장관의 ‘사면’을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권전부장도 현철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문민정부 아래서 안기부는 현철씨의 사조직으로 전락했다. 안기부 수뇌부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현철씨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날개’를 달아주었다.

김대통령에게 올라가야 할 정보는 일단 현철씨에게 먼저 전달됐다. 현철씨를 조금이라도 나쁘게 얘기하는 민주계 인사들은 도청 감시 견제의 대상이었다.

김영삼정부 초기에는 안기부 간부들이 의도적으로 현철씨를 이용했던 측면도 없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취임초 안기부의 보고서를 아예 외면했다. 안기부 간부의 설명.

“시급을 요하는 정책보고서를 올려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김덕부장과 현철씨 정도였지요. 그래서 현철씨를 통해 보고를 올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물론 현철씨를 통하면 즉각즉각 반응이 있었죠.”

▼ 「신상보고」 통해 견제 ▼

김대중(金大中)정부 들어 안기부 새 수뇌부는 현철씨 인맥에 대한 정리에 나섰다. 하지만 현철씨 인맥을 솎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차장과 김차장에게 충성했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현철씨 인맥으로 보는데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원칙에 철저한 조직이었다. 안기부 한 간부의 설명.

“문민정부 들어 민주계 인사들이 김영삼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출신 80여명을 특채해 달라고 안기부에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덕부장이 나서서 이를 막았죠. 인원정리를 한다며 있는 식구도 내보내는 마당에 특채를 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폈죠. 그래서 5명의 외부인사만 특채하는데 그쳤습니다. 따라서 안기부내 현철씨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 김차장이 확실한 현철씨 인맥이었고, 두 사람이 중용한 인물들은 광의의 현철씨 인맥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철씨가 곧 안기부장이었는데 인맥을 따로 가동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현철씨는 안기부를 통한 도청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신상보고’를 통해서도 민주계 핵심인사들을 견제했다. 청와대 전비서관의 증언.

“집권 초였어요. 어느날 청와대에서 안기부에서 올라온 신상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김덕룡(金德龍)의원에 대한 내용이더군요. 그런데 김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가 주를 이뤘습니다. ‘김의원의 광화문 사무실에 상주직원만 30명이 넘고 이들을 중심으로 ‘김덕룡대통령 추대위원회’를 결성할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음’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더군요. 김의원은 김대통령 취임 직후 현철씨의 유학을 건의했다가 현철씨의 눈밖에 난 케이스였죠.”

김기섭전차장은 최근 안기부 직원의 상가에 들러 옛 부하들에게 “김소장을 끝까지 보호하겠다. 김소장과 나는 한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씨와 ‘한몸’임을 자처한 김전차장, 현철씨의 비리를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 동승했던 안기부 수뇌부의 불행한 종말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셈이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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