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권재현/PC통신 성폭력 「백기」

  • 입력 1998년 4월 28일 19시 34분


“이번사건은 명백한 성폭력이었음을 인지하고 전체 남성을 대표하여 여성들에게 사과합니다.”

PC통신 유니텔의 공개대화방에서 자신의 ID로 이뤄진 ‘너랑 나랑 여관에서 함께 잤잖아’라는 성폭언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미루다 이화여대여성위원회에 의해 실명까지 공개된 서울 D대 공대생 S씨.

한달이 넘게 해명과 사과를 미뤄오던 그가 여성들의 줄기찬 공격앞에 마침내 두손을 들었다.

S씨는 최근 여성위 앞으로 보낸 사과문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겠지 하는 안이한 자세가 여성 여러분의 분노를 산 것 같다”면서 “넓은 아량으로 저의 사과를 받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초 ‘선배나 친구가 내 ID를 몰래 쓴 것 같다’며 정확한 해명을 회피하던 S씨도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면서 겪게 된 압박감을 결국 견뎌낼 수 없었다.

“저는 지금 주위 선배나 하숙집 사람들, 심지어 부모님께도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여성위측과 피해학생은 그러나 “S씨가 성폭력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누가 자신의 ID를 사용했는지 입증할 의무가 그에게 있다”며 보다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게다가 S씨의 ID는 절대로 타인에게 빌려줘서는 안되는 시솝(컴퓨터통신동아리대표)의 것이었다.

S씨는 결국 수정사과문을 통해 “ID에 대한 관리 소홀 책임을 통감하며 이 ID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여성위측은 이 사과문을 바탕으로 유니텔측에 S씨의 ID해지를 요구했고 유니텔측은 S씨에 대한 정식 ‘추방조치’를 취했다.

‘익명의 바다’에 또다른 ‘규칙의 물기둥’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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