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진규/대학도 구조조정을

  • 입력 1998년 4월 27일 19시 56분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수입에 별 변화가 없어 일견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외곽에 있는 듯하지만 대학이라는 기차는 이미 위기의 터널에 갇힌 지 오래다. 부도 직전까지 이르렀던 모 종합대의 경우는 알려진 예에 불과할 뿐 앞으로 더 많은 대학이 문을 닫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 무분별 신-증설 큰폐해 ▼

기업부도 탓이겠지만 올해 대학 졸업생의 절반 가량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배출된 전문의의 태반이 직장을 얻지못해 11년에 걸친 긴 공부를 마감하지 못하고 있다. 입시지옥과 과열과외라는 복합적 고질의 치유를 대학 증설이라는 유일 처방으로 해결하려 했던 무분별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노태우 김영삼대통령 시절 신설된 의과대학의 수는 같은 무렴 허가받은 PCS 사업자 수보다 많으며 악성 단기 외채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현 경제위기의 근인(近因)을 제공한 부실 종금사수에 육박한다. 필요한 교수진을 확보하지 못해 남의 대학으로 학생들을 실어날라 실습을 받게 하는가 하면 정규 강의 대신 세미나로 이수 학점을 메워나가는 파행 교육이 목격되고 있다. IMF시대를 맞기 전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매년 5억원 내외의 예산으로 1천여종의 의학분야 학술지를 구입해 왔다. 환율 인상과 정부 예산의 증액 불가로 올해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학술지는 4백여종에 그쳐 60%에 달하는 학술지가 단종될 전망이다.

과외열풍으로 인한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와 촌지라는 비교육적 폐해의 악순환을 뿌리뽑을 대학 교육 전반에 관한 근원적인 개혁이 시급하다. 이는 대학의 경쟁력을 개설 학과나 입학 정원의 수로 자리매김하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교수와 학생, 학부모와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 모두의 개혁 마인드를 필요로 한다. 학생 선발제도, 대학의 구분, 학위제도, 학제개편 등 대학에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인수 합병(M&A)이라는 기업 구조조정의 한 유효한 처방으로부터 대학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학풍 동문으로 상징되는 전통에 대한 미련이 큰 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대학과 성심여대의 합교, 우석의대를 병합한 고려대의 성공적 사례들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소규모 유사학과의 통폐합으로 학부를 만들어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아무런 특징없이 설립된 수백개의 대학을 상호 보완적으로 합병해 특성화된 대학으로 육성하거나 연합대학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선 대학마다 구입하는 도서관의 책뿐만 아니라 훌륭한 교수나 교육시설을 공유하게 되는 경제적 이익도 매우 클 것이다.

산재한 군소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들도 지역별로 통합함으로써 유능한 전문 직업인이 배출될 수 있는 프로페셔널 스쿨로 키워야 한다. 산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를 4년제 종합대에 부설화하거나 연계함으로써 전문대 학생들의 사기를 높이고 기술 교육과 더불어 폭넓은 지식 함양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듯 큰 틀에서 접근하는 대학 전반에 관한 개혁으로 대학 선택의 길이 다양해지고 교육의 내실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과외 열풍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 지역별통합-특성화해야 ▼

우리 국민 모두는 이제 IMF라고 하는 강을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타고 건너려 하고 있다.

비록 거품이었다고는 하나 IMF 이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하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하니 그 강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역시 이 강을 넘어야 한다. 국가의 장래를 가늠할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방위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진규<서울대교수·임상병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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