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707)

  • 입력 1998년 4월 27일 0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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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3〉

노인의 유품을 찾으러 온 젊은이가 하도 불량해 보여서 나는 짐짓 물었습니다.

“뭘 말이요?”

“죽은 사람의 유품 말입니다.”

“어떤 유품 말인가요?”

내가 다시금 이렇게 다그쳐 묻자 젊은이는 혹시 자신이 잘못 찾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나일강의 뱃사공이 아닌가요?”

“그건 그렇소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의 유품, 즉,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맡아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이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는 다시금 그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누가 당신한테 그 말을 해줍디까? 나한테 가면 유품이 있다는 말을 말이요?”

그러자 젊은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그게 누군지 잘 모릅니다. 나는 다만 어젯밤에 친구 결혼식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밤이 깊어 잠시 쉬려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누가 내 옆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전능하신 알라께서는 어떤 성인을 자기 곁으로 부르시면서, 그대로 하여금 그 성인의 뒤를 잇도록 하라는 계시가 계셨다. 그러니 지금 곧 나일강의 뱃사공을 찾아가 고인의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받아오도록 하라. 죽은 이가 그대를 위하여 그 물건들을 뱃사공한테 맡겨두었으니까’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젊은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잠시후 그는 변명하는 어투로 덧붙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나는 일어나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알 수 없는 사람한테서 들은 말이 자꾸 신경쓰였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인의 유품을 꺼내어 그 젊은이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훌렁훌렁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 누더기 옷을 걸쳤습니다. 그런 다음 한 손에는 호리병을,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가버렸습니다. 그 젊은이가 가버리고 혼자가 되자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그때 비몽사몽간에 홀연히 거룩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나의 종아, 왜 그리 슬피 우느냐? 나는 나의 종 하나를 나에게 돌아오도록 허락하였거늘, 그게 슬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얼마나 인자하게 들렸던지 나는 다시금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며칠 뒤 나는 마침내 고향 마을을 떠나 이렇게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한가지 신통한 것은 돈 한푼 없이 출발하여 일 년이 넘도록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여태껏 내가 굶어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배가 고플 때면 때마침 착한 농부를 만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고 목이 마를 때면 물통을 들고 가는 소년 소녀를 만나 물을 얻어마실 수 있었습니다. 배삯은 내가 메카를 방문할 때 알라께서 노잣돈으로 지불하리라고 했던 그때 그 노인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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