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前외무-로드 前美국무부차관보 특별대담]

  • 입력 1998년 4월 25일 06시 58분


한승주(韓昇洲) 전 외무장관과 윈스턴 로드 전 미국국무부 동아태 차관보(93∼96년)는 24일 동아일보를 위해 특별대담을 갖고 ‘한국의 새 정부와 한반도문제’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서울국제포럼(회장 김경원·金瓊元) 초청으로 방한한 로드 전 차관보는 주중(駐中)대사를 역임한 미국내의 손꼽히는 동북아전문가다.

▼한승주〓베이징(北京) 남북 차관급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북한은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알고 회담에 나왔다가 실망한 듯 보였다. 그러나 한국국민은 베이징회담에 대한 새 정부의 전략을 지지했다. 미국은 남북대화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윈스턴 로드〓새 정부의 접근은 전략 전술면에서 다 건전했다.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되 흡수통일은 배격하고, 대화와 교류는 추진한다는 전략은 올바른 대북 접근책이다. 한국은 이산가족문제에 있어서 북에 양보를 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술적으로도 옳다. 이산가족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도적인 문제다.

▼한〓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거와 다른 것이 있는지. 지금까지는 북한과의 접촉 자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에 북한은 만나주기만 하면서 식량지원이나 북―미(北―美)접촉 등 실익을 챙겼다는 지적도 있다. 4자회담도 사진촬영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비난도 있고….

▼로드〓4자회담이 실익없는 만남이 돼버리는 데에 반대한다. 4자회담은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완강히 버티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중국을 (4자회담의)협상파트너로 끌어들여 한반도문제를 함께 논의하게 만든 것도 큰 수확이다.

▼한〓한미간 공조에 이상은 없는지. 93년 북한핵협상을 계기로 정책공조에 불협화음이 일기시작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로드〓한미간 정책조율에 기복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장관도 재임시절 경험을 통해 알다시피 큰 줄기에서 보면 양국은 충분한 사전 사후조율을 했고 대북문제에 있어서 어떤 오해도 없었다고 본다. 다만 94년 제네바협상 당시 북한과 미국관리가 협상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돼 한국인들이 한국이 배제됐다는 인상을 갖게 된 것 같다.

▼한〓클린턴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소프트 랜딩(연착륙)’으로 집약된다. 몇년전만 해도 ‘소프트 랜딩’은 문제가 있는 정책으로 간주됐으나 적어도 요즘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민 일부는 이에 대해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들 눈에 ‘소프트 랜딩’은 북한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로드〓‘소프트 랜딩’이 성공하려면 한미 양국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같은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소프트 랜딩’과 김대통령이 말하고 있는 ‘햇볕이론’은 ‘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막는다’는 점에서 같다. 우리의 과제는 북한정권의 체질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계속 폐쇄정책을 고수하다 파멸할 것인지, 외부의 도움을 얻으며 개방화의 길을 걸을 것인지 양자간에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다면 한미 양국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지는 것 아닌가. 물론 북한도 한국과 미국의 진지한 노력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해야 한다.

▼한〓중국대사를 역임한 중국전문가로서 4자회담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보는지. 중국은 북한의 돌출행동을 막아줄 마지막 보루이자 스스로 개방에 성공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에 모델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보는데. 또한 4자회담 당사자는 아니지만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도 한반도문제에 중요한 변수라고 볼 수 있는데….

▼로드〓‘북한 전문가’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은 베일에 가려있고 상대하기 어렵다. 다만 중국은 대북한 식량지원을 통해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과시하는 한편 4자회담에 참여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특히 이번 베이징회담때는 회담기간 중에 대북한 식량지원의사를 밝혀 한창 협상 중인 한국의 입장을 어렵게 했다. 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자금지원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 한반도 문제를 다루면서 일본 외무성과 여러차례 접촉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바라는 일본의 의사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한〓한미 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지금 한국내에선 한반도의 안정에 대한 ‘조심스러운 비관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조심스러운 낙관론’으로 전환하기 위한 자세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나.

▼로드〓지금은 새 정부가 대북정책을 펼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마련돼 있다. 타이밍이 좋다는 얘기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이 대화를 먼저 요구해 왔고 김대통령의 미국방문으로 향후 양국간 대북한정책을 조율할 기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철저히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선 비이성적 돌출행동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충분한 정보교환을 통한 한미 양국의 공조체제 유지가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북한을 외부세계로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한국과 미국이 때로는 경수로 사업지원이나 중유공급 등 일방적이지만 계산된 양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70년대 중국이 그랬듯이 외부세계와 상호의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 다다른다면 남북한 문제는 큰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한미 연합방위로 인한 전쟁 억지력은 확고하며 한미간 공조체제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 선택은 이제 당신들의 몫이다’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국내정치 측면에서 당장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이로 인해 중장기적인 이득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이재호·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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