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 개국35돌]끝나지 않은 법정투쟁

  • 입력 1998년 4월 24일 19시 49분


동아일보사의 동아방송(DBS) 반환소송은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상징적인 법정투쟁이다.

동아일보사는 90년 11월19일 국가와 한국방송공사(KBS)를 상대로 동아방송 양도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냈다.

소송의 취지는 “80년 신군부의 강권통치에 따른 동아방송 자산의 양도와 방송허가권의 포기는 원인무효이며 피고들은 동아방송을 원상회복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

3년8개월에 걸쳐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동아일보사는 몇가지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80년 11월12일 당시 동아일보사 김상만(金相万)회장과 이동욱(李東旭)사장이 보안사에 강제 연행된 뒤 항거불능의 압박감 때문에 작성한 동아방송 양도각서는 법률상 무효이다.

△동아방송은 동아일보사의 영업에 필요불가결한 중요재산인데도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은 당시의 양도는 무효이다.

△공영방송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민영방송인 동아방송을 빼앗아간 정부가 공 민영 혼합체제로 개편하면서 서울방송(SBS)에 동아방송 채널을 넘긴 것은 이율배반적인 처사다.

80년 폐간된 신아일보의 장기봉(張基鳳)사장은 “언론통폐합 당시 정부와 보안사의 강권통치 때문에 언론사 사주의 자유의사는 완전히 박탈된 상태였다”고 증언, 동아일보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법의 심판으로 잘못을 바로잡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94년 7월14일 “동아일보사측의 주장은 이유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동아방송의 양도가 의사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자산양도가 방송국 폐업 이후 진행됐기 때문에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판결의 주요 이유였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10여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지극히 평면적이고 다분히 법실증주의적인 형식논리로 판단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보안사 조사실에서 고문이나 물리적 린치 없이 각서작성을 강요당한 정도로는 자유의사가 완전히 박탈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군화발’이 ‘법전(法典)’까지 짓밟은 당시의 억압적 분위기를 외면했다는 것.

동아일보사와 변호인단은 항소할 것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언론사통폐합사건 중 지방MBC 주식반환소송이 93년 1월 대법원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받은 데 이어 다른 유사소송도 잇달아 패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투쟁’을 중단할 수 없었기에 결국 항소했다.

현재 서울고법 민사7부(재판장 김상기·金相基 부장판사)에 계류중인 항소심의 주된 쟁점은 동아방송의 재산양도와 직원의 소속변경이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항이었느냐는 것.

변호인단의 차형근(車亨根)변호사는 “실질적인 내용과 정황을 따져보면 동아방송의 양도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반드시 거쳐야 할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는 언론통폐합 이후 주총을 열어 방송업을 하지 않기로 정관을 변경했지만 동아일보사는 지금까지 정관변경이나 주주총회 결의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동아방송 양도가 다른 언론통폐합사건과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점이다. 일부 법관들은 이같은 사실에 주목, “당시 양도는 특별결의가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동아방송을 선택적으로 구제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원홍(李元洪)전KBS사장도 이와 관련, 지난 1월 항소심 법정에서 중요한 증언을 했다.

“방송의 영업인수는 방송 기자재와 인원, 그리고 주파수 방송허가권 등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당시 동아방송을 포괄적으로 인수한 만큼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아방송이 형식적으로 언제 영업을 폐지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증언은 ‘동아방송의 양도는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없는 일부 영업용 재산의 단순한 양도였다’는 1심 판결을 정면으로 뒤엎는 중요한 증언이다.

80년 11월 신군부의 총칼에 ‘국민의 귀와 눈과 입’인 언론사 44개가 강제 통폐합됐다. 이들 대부분이 반환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하고 현재 동아방송 반환소송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언론통폐합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자유언론을 회복할 ‘마지막 불씨’가 동아방송을 되살리려는 법정투쟁에 담겨있다.

동아일보는 역사적 재판에서 승소할 때까지 ‘민중의 소리’를 되찾기 위한 법적대응을 계속할 것이다. 재판에서 승소하여 동아방송 송신소 부지 등 동아방송의 재산을 되찾을 경우 동아일보사의 재산으로 귀속시키지 않을 방침이다. 어두웠던 시대를 환히 밝혔던 동아방송의 올곧은 정신을 기리고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고려대 1백주년(2005년)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헌정할 계획이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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