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 (706)

  • 입력 1998년 4월 24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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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2〉

두번째 순례자의 이야기.

나는 나일강에서 뱃사공을 하던 자로서 강의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을 왕래하면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룻배에 쭈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초라한 노인 한 사람이 와서 내게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나를 저편 기슭으로 건네주구려.”

노인은 누덕누덕 기운 웃옷에 한 손에는 호리병 하나를,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노인은 뱃삯을 지불할 돈도 없으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게 내 직업인걸요.”

그러자 노인은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지불해야할 뱃삯은 알라께서 갚아주실 것이오. 당신이 이곳을 떠나 메카로 갈 때 노자로 말입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노인을 태우고 강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오르자 노인은 다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실은, 당신한테 드릴 또 한가지 중요한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입니까?”

“신의 계시로 이제 내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소. 내일 낮에 당신이 저 나무 밑에 와 보면 내가 죽어 있는 걸 보게 될 거요. 그러면 내 시체를 씻고 수의를 입힌 다음 나의 유품, 즉 내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거두어 주시오.”

노인이 하는 말이 다소 실없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물었습니다.

“그걸 뭐에 쓰게요?”

“훗날에 누가 당신한테 그 물건을 찾으러 오면 그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말하고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 기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노인과 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렇게나 한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나는 몹시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약속 장소로 달려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제 그 노인이 정말 나무 밑에 죽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새 수의를 베개삼아 베고 더없이 평화로운 얼굴로 죽어 있는 노인의 시체에서는 사향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나는 시체를 씻고 수의를 갈아입히고 기도를 드린 다음,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누더기가 다 된 노인의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잘것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튿날 아침, 성문이 열린 지도 얼마 안되는 이른 시각에 젊은이 한 사람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보아하니 그 젊은이는 놈팡이 건달 같은데, 야한 옷을 입고 손에는 헤너로 물까지 들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맡아가지고 있는 물건을 나한테 돌려주세요.”

그 젊은이는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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