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순례자의 이야기.
나는 나일강에서 뱃사공을 하던 자로서 강의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을 왕래하면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룻배에 쭈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초라한 노인 한 사람이 와서 내게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나를 저편 기슭으로 건네주구려.”
노인은 누덕누덕 기운 웃옷에 한 손에는 호리병 하나를,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노인은 뱃삯을 지불할 돈도 없으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게 내 직업인걸요.”
그러자 노인은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지불해야할 뱃삯은 알라께서 갚아주실 것이오. 당신이 이곳을 떠나 메카로 갈 때 노자로 말입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노인을 태우고 강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오르자 노인은 다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실은, 당신한테 드릴 또 한가지 중요한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입니까?”
“신의 계시로 이제 내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소. 내일 낮에 당신이 저 나무 밑에 와 보면 내가 죽어 있는 걸 보게 될 거요. 그러면 내 시체를 씻고 수의를 입힌 다음 나의 유품, 즉 내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거두어 주시오.”
노인이 하는 말이 다소 실없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물었습니다.
“그걸 뭐에 쓰게요?”
“훗날에 누가 당신한테 그 물건을 찾으러 오면 그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말하고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 기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노인과 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렇게나 한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나는 몹시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약속 장소로 달려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제 그 노인이 정말 나무 밑에 죽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새 수의를 베개삼아 베고 더없이 평화로운 얼굴로 죽어 있는 노인의 시체에서는 사향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나는 시체를 씻고 수의를 갈아입히고 기도를 드린 다음,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누더기가 다 된 노인의 웃옷과 호리병과 지팡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잘것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튿날 아침, 성문이 열린 지도 얼마 안되는 이른 시각에 젊은이 한 사람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보아하니 그 젊은이는 놈팡이 건달 같은데, 야한 옷을 입고 손에는 헤너로 물까지 들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맡아가지고 있는 물건을 나한테 돌려주세요.”
그 젊은이는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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