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2개월 경제점검]『정책만 남발 실천이 없다』

  • 입력 1998년 4월 24일 19시 47분


《25일로 새 정부가 출범한지 두달이 된다. 그 사이 외환위기의 고비는 가까스로 넘겼다. 정부는 경제회복대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 경제팀은 ‘한건주의식’ 설익은 정책을 남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도 부진, 제2의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대중(金大中)정부 두달의 경제운용을 점검해본다.》

▼쏟아지는 정책, 실효가 적다〓새 정부출범 이후 메가톤급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구체적 실천방안이 미흡해 혼선을 빚고 있다.

경제부처들이 재원마련 등 충분한 검토없이 ‘한건주의’식으로 정책을 쏟아놓고 있고 부처간 의견조율마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재정경제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돕기위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외국인투자 관련 인허가 권한을 일괄대행토록 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토지용도변경 및 도시개발계획의 문제점 등을 이유로, 환경부는 오염물 배출시설설치 허가권을 들어 인허가 일괄대행에 반대, 정책 혼선이 벌어졌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15일부터 실시중인 실직자 생계비 및 소규모 창업자금 대출도 24일 현재까지 8건 4천여만원에 불과, 유명무실하다. 은행들이 담보부족 등을 이유로 대출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위는 18개부처에 ‘1부처 1연구소’원칙을 제시했지만 관련부처와 연구기관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슬그머니 원칙을 철회했다. 1부처 1연구소는 목표일뿐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기획예산위가 말을 바꾸고 있다.

건교부도 실업대책으로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조기 발주와 고속철도, 투자자유도시 등 대형 국책 사업의 정상추진을 발표했으나 예산당국과 협의를 거치지 않아 혼란을 초래했다.

대기업 부채비율 200% 감축과 관련,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감독원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면서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최근까지도 혼선을 겪고 있다.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은 은행감독원이 정책을 입안 집행해본 경험이 없어서 나온 실수라고 해명했다.

▼다시 위기 올 수 있다〓개혁정책 추진 부진과 각종 경제 지표상 불안요인이 잇따라 나타나 제2 외환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수출증가의 둔화, 외국인 투자 감소, 6월까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 자본비율을 맞추려는 은행들의 자금회수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 등이 맞물리면서 이같은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부도공포로 회사채 발행이 거의 마비되고 있다.

선진 13개국의 2선자금 80억달러와 세계은행(IBRD) 추가제공분 50억달러 도입이 불투명하고 △5월중 예상되는 대량 해고에 따른 노동계의 파업움직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전투구 △대기업을 포함한 기득권층의 반발까지 얽혀 제2외환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 우리정부가 경제회복의 중심 축으로 믿고 있던 무역수지 흑자폭이 감소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수출은 63억6천4백만달러. 지난달 같은 기간(69억9천1백만달러)보다 8.9%나 줄었다. 이에따라 무역수지 흑자폭도 지난달 같은 기간 14억5천7백만달러에 비해 이달에는 10억1천1백만달러로 30% 가량 줄었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출증가는 작년 재고분을 비롯, 금과 설비시설까지 뜯어내 파는 이른바 ‘누룽지 수출’ 성격이 강했다”며 “반도체와 조선이 작년보다 9%와 40% 감소하는등 수출경쟁력을 갖춘 품목이 별로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3월 한달동안 서울에서 교환된 어음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7% 감소한 10조4천억원이었고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원인 회사채 발행도 이달들어 20일 현재까지 1조2천4백억원에 불과,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다. 올들어 지난 10일까지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은 모두 43억달러. 이중 38억달러가 주식과 채권에 몰렸고 직접투자는 5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달들어 외국인들은 증시에서 마저 더욱 소극적이 돼 주식매수규모가 △1월 2조4백37억원 △2월 3조4백9억원 △3월 2조3천4백79억원을 기록하다 이달 1∼20일에는 2천1백62억원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의 제언〓일단 새정부의 개혁정책 노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책추진 속도와 정책혼선 등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정비를 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한구(李漢久)대우경제연구소장은 “김대중대통령은 당선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지만 취임이후 보여준 정책혼선 등 국정운용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팀들은 위기극복의 구체적 프로그램과 각종 개혁을 어떤 순서를 밟아 진행할지 제시해야 하며 급한대로 경제대책조정회의를 활성화해 정책조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정책조율로 자산시장을 활성화해놓은뒤 기업에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비율 감축 등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IMF팀장은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기위해 재원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며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즉각적인 퇴출 등으로 구조 조정에 먼저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달(沈相達)한국개발연구원(KDI)거시경제팀장은 “최근의 정책혼선은 추진주체가 너무 많은데서 비롯되고 있다”며 “전체를 조율하는 옛 경제부총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업무분할을 분명히 해 책임을 확실히 지우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병희·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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