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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성철/경제위기와 「아시아的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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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성철/경제위기와 「아시아的 가치」

입력 1998-04-23 19:43수정 2009-09-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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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경제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번 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인 것을 넘어 아시아적인 문화, 아시아적인 가치에서 찾고자 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번에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온 것은 아시아적인 가치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 또는 가치체계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정보화시대에 부응못해 ▼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인가.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압축 표현된 아시아의 유교적 가치는 한마디로 사람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가치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합리보다는 의리를 중시해 왔다. 인간관계에서 계산적이기 보다는 인정을 중시해 왔고 무엇보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해 왔다. 그래서 분해하기보다는 종합하고 통합하기를 즐겨했으며 분석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더 중시했었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의 징후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상징하듯 개인의 특성보다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조화와 인화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 그래서 중국음식점에 가서 각자 입맛 당기는 음식보다 ‘자장면으로 통일’을 외침으로써 서로 맺어진 끈끈한 정을 느끼며 흐뭇해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다.

그 때문에 우리는 회사에 입사해 동기생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각자 가진 능력에 관계없이 똑같은 월급을 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해 왔으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종신고용제를 높은 가치로 지향해 왔다. 아는 사람끼리 적당히 봐주고 적당히 집어주고 적당히 거짓말해 주는 것을 부정 부패라기보다 사람간 인정의 당연한 도리요, 표현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21세기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우리가 갖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와 배치되는 것들이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가치다. 영화 ‘쥬라기공원’이나 빌 게이츠가 상징하듯 개인의 창의와 이니셔티브에 의해 엄청난 부(富)가 창출되는 것이 수없이 목격되고 그래서 개인을 독립시키고 개별화하고 특화시키는 것이 바로 부의 창조와 직결됨을 실감하고 있다.

또한 정직과 투명성은 21세기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큰 가치다. 워싱턴대통령의 벚꽃 나무 일화에서 보듯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직이 가장 중요한 가치의 일부였지만 우리의 유교 문화에서 정직이란 한번도 가치 체계의 최상위권에 위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투명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이 날이 갈수록 실증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21세기는 얽히고 설킨 인간과 인간간의 유대보다는, 즉 의리와 정보다는 실용과 합리를 요구하고 있다.

잘라야 할 때 냉정히 자르지 않고는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은, 정과 의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가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 의 예 지로 표방되는 아시아의 유교적 가치 체계는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다. ‘인’보다는 공평이라는 가치가 우선되고 ‘의’보다는 합리가, ‘예’보다는 실용이, ‘지’보다는 창의가 더 경쟁력 있는 가치라는 당혹스러운 현실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 연봉제 투명성 적대적 M&A 등 우리가 요즘 듣고 있는 새로운 용어들은 사실은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의 표면적 징후들일 뿐이다.

▼ 정체성 갖춘 변신 서둘때 ▼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아시아인들의 지혜란 무엇일까. 만일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이 이 시대 생존의 필수적 요소라면 어떻게 하면 아시아인의 혼을 잃지 않고 이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적으로 수용,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은 경제회복과 함께 우리 모든 아시아인들의 숙명적 과제가 되고 있다.

전성철<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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