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만 날린 축산폐수시설

  • 입력 1998년 4월 23일 19시 43분


환경부가 수질개선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했거나 건설중인 축산폐수처리시설들이 설계 잘못으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다는 보도다. 환경부는 이미 완공된 12개소의 축산폐수처리시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시인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재 건설중인 46개 시설에 대해 공사를 보류하거나 사업추진을 전면 유보키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왜 수질이 개선되지 않았는지 알 만하다.

환경부의 엉터리 축산폐수처리시설 설계로 낭비된 예산은 모두 2천4백억원 정도라고 한다. 국민의 뼈아픈 혈세가 정부의 실수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예산낭비도 그렇지만 문제의 축산폐수처리시설들이 쓸모가 없게 된 이유를 보면 더욱 기가 찬다. 환경부는 당초 문제의 시설들이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5천PPM 이하의 축산폐수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러나 막상 시설들을 완공해놓고 보니 실제 처리장으로 흘러드는 축산폐수의 BOD가 2만∼2만5천PPM이어서 용량초과에 따른 ‘처리불능’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폐수처리시설을 설계하면서 정작 처리대상물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몰랐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학적인 기초조사도 없이, 현장에는 한번도 나가보지 않은 채 이른바 ‘탁상행정’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건설업계 일부에서 “환경부 관련 공사를 하면 이익이 많이 남는다”는 말이 일찍부터 나돈 것도 환경부의 눈먼 탁상행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탁상행정에 따른 예산낭비가 환경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30대 국책사업 중 상당수가 부실사업으로 지적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탁상행정 탁상정책 때문이다. 말썽 많은 고속철도건설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화호 새만금호간척사업 청주비행장건설 등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도 결국은 실패로 끝났거나 실패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예산낭비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국민이 낸 세금을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써대거나 낭비하는 공무원은 이름만 공무원이지 실은 ‘세금 도둑’이다. 그런 사람들을 제때 제때 처벌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환경부의 엉터리 축산폐수처리시설 공사와 관련된 전현직 공무원들을 철저히 가려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 관련 공무원들과 업자의 부정한 결탁이 있었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국민은 세금만 내는 ‘봉’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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