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감사원과 계좌추적권

  • 입력 1998년 4월 22일 19시 46분


감사원이 현재 회계감사에만 허용되고 있는 계좌추적권을 직무감찰에도 도입하려는 것은 공직사회의 부패예방과 척결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사정(司正)의 중추인 검찰과 감사대상인 공직사회에서 민감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감사원이 수사기관이 되겠다는 발상이나 같다고 경계한다.

감사결과 범죄의혹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것으로 충분한데도 감사원 스스로 혐의를 완벽하게 밝혀내려는 것은 업무영역을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공무원과 정부산하단체에서는 감사원이 계좌추적권을 남용하면 공직사회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감사원은 원래 직무감찰에도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었으나 93년 금융실명제가 도입되면서 내놓게 됐다. 따라서 감사원의 요구가 수용되면 엄밀히 말해 계좌추적권이 ‘부활’되는 셈이다. 감사원이 이 시점에 계좌추적권 문제를 들고 나온 사정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벌인 환란(換亂) 등에 대한 특감과정에서 계좌추적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계좌추적권 논란의 핵심은 공직사회의 부패방지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중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에 모아진다. 부정부패를 강력히 단속할 필요가 있는 후진사회에서는 계좌추적권을 인정하고 선진국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여 이를 허용하지 않는 추세다. 계좌추적을 하면 공직자들의 전형적 범죄인 뇌물혐의를 밝혀내는 작업이 손쉬워진다. 계좌추적권 보유 자체가 강력한 경고와 위협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공직부패가 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감사원의 계좌추적권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남용 또는 악용의 소지다. 물론 감사원이 계좌추적권을 갖더라도 검찰을 통해 법원의 영장을 얻어내야 실제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차적 통제는 된다.

그러나 특정 공직자에 대한 ‘표적추적’과 사생활 침해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뇌물을 주는 쪽이 주로 민간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민간인에 대한 계좌추적으로 이어질 우려도 높다. 따라서 남용 억제장치가 꼭 보완돼야 한다.

아울러 감사원의 기능강화를 위해 감사전문인력을 보강하고 각 부처 감사관실을 감사원 소속으로 일원화, 평상시 예방감사에 주력하게 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 특히 각 기관에 맡겨져 있는 유명무실한 공직자 재산등록 실사권(實査權)을 감사원이 갖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내실있고 성역없는 감사를 위해서는 감사체계부터 과감히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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