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씨 재심공판]세월은 못훔친 「초로의 大盜」

  • 입력 1998년 4월 22일 19시 45분


“동정을 빌고 싶지 않다. 다만 진실을 말하겠다.”

83년 법원 구치감에서 탈주했다가 잡혀 징역 15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5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54)씨.

그는 22일 서울지법 319호 법정에서 열린 자신의 보호감호 재심청구 사건 첫공판에서 15년 전 사건의 ‘감춰진 진실’이 있다고 주장했다.조씨는 재벌과 고위 공직자의 집에서 훔친 ‘장물’의 규모가 수사기관의 조작으로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기관이 피해자들의 요청과 압력으로 피해액수를 줄이는데 급급했다는 것. 그는 “나의 진술은 폐기처분됐지만 구형량을 줄여주겠다는 제의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며 “이번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조씨의 변호인인 엄상익(嚴相益)변호사는 “공소사실은 절도건수가 11건에 피해액이 10억여원이었지만 실제 훔친 액수는 수백억원대에 이른다”고 보충설명을 했다.

엄변호사는 “조씨가 권세가들의 집에서 턴 보석류만 자루 2개 분량이었다”고 주장했다.

엄변호사는 또 “절도품 중 논란이 됐던 물방울다이아몬드보다 훨씬 귀중한 보석도 있었는데 피해자에게 돌아가지도 않고 사라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엄변호사는 이어 “당시 조씨는 김종필(金鍾泌·JP)총리서리 집에도 들어간 적이 있는데 보석과 현찰은 없었고 대신 그림과 서예 작품같은 것만 걸려있어 도둑의 ‘체면상’ 은비녀 한개만 갖고 나왔다”고 전했다. 엄변호사는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비난받아야 할 ‘피해자’들은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자신의 수감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청송교도소에서 15년 4개월동안 1평짜리 시멘트 굴 같은 독방에서 다른 수감자와 격리된 채 생활했다는 것.

그는 특히 6개월 동안은 양팔과 양다리를 묶인 채 밥도 혀로 핥아먹었고 3년 동안은 수갑을 찬 채 24시간 폐쇄회로TV의 감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또 “15년 동안의 ‘인격수양’을 바탕으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생을 감옥에서만 보낸 그는 이미 초로의 노인이었다. 다음 공판은 5월6일 오후4시.

〈이수형·이호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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