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잠깐만]이순희/아이숙제 통해 큰사랑 느껴요

  • 입력 1998년 4월 22일 06시 33분


매일 저녁 9시반경이 되면 어김없이 “사인해 주세요”하고 내미는 둘째녀석의 알림장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리고 느낀 점을 일기에 쓰기, 저녁상 차릴 때 수저놓기, 봄에 나는 나물로 반찬해 먹고 맛과 향에 대해 적기,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전화드리기 등.성적을 좌지우지하는 수학 국어 낱말찾기 위주의 숙제를 선호하는 우리 보통 엄마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알짜배기 인성교육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4학년 정도 되면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아이에게 맡겨두는 편인데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은 좀 다르다. 꼭 사인을 받도록 하고 꼭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까지 한다.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 글쓰기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고 어른들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아이들의 미래를 부단히도 걱정하는 분일 거라 생각되어 조용히 찾아가 교실문을 두드렸다. 교실은 예상대로 화려하지 않았다. 빈우유깡통과 페트병, 개개인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흙속에 묻혀 있었다. 교실 구석구석에서 선생님의 어린이를 향한 사랑이 지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촌지나 기부행위 등등으로 일선에서 애를 많이 쓰는 선생님들을 향해 무섭게 회초리를 들곤 한다. 파면교사가 나오고 촌지수수 비난에 시달리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정말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촌지교사에 대한 강력한 징계조치는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의 자존심을 세워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훌륭한 일선의 선생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순희(광주시 광산구 월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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