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꿈나무재단 묘목심은 오달곤선생 전기 나와

  • 입력 1998년 4월 21일 19시 24분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이름인 현암 오달곤(玄岩 吳達坤). 황해도 출신으로 한국전쟁때 가족과 헤어져 혈혈단신 월남한 평범한 농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꿀벌을 치고 제주도에서 귤밭을 일구며 일생을 보냈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검약정신으로 20년간 모은 돈 1백만원을 들고 동아일보사를 찾은 것이 71년.

“동아일보 창간 1백주년을 맞는 2020년부터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내놓았다.

당시 1백만원은 신문사 부장 월급의 20배에 해당하는 돈. 그는 이때부터 78년까지 8차례에 걸쳐 1천2백만원을 기탁했다.

청소년 장학사업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70년대초. 이렇게 한 농부가 심은 장학사업 묘목은 이후 독지가들의 들불같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27년이 흐른 98년 현재 동아꿈나무장학금은 1백82명의 독지가들이 기탁한 35억원과 동아일보사가 75년 광고탄압 당시 국민이 보내준 성금을 모아 출연한 5억원, 독지가가 기증한 토지 등을 합쳐 78억원의 거목으로 자라났다. 85년 68세를 일기로 작고한 평범한 농부, 그러나 그 뜻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작은 거인’오달곤. 그의 일생을 최근 최준철(崔俊喆)동아꿈나무재단이사가 한권의 전기로 엮어냈다.

‘그 한그루의 꿈나무는’ (동아일보사 발간).

찬서리 가득찬 혼탁한 세파속에서 한줄기 따뜻한 빛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보라”고 외쳐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오선생은 한평생 꿀벌을 치고 흙일만 하다 간 성실하고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하지만 항상 겨레의 장래를 걱정했고 결국은 자신이 평생 벌처럼 일해 모은 재산을 미래의 청소년들을 위해 내놓은 우리 시대의 ‘작은 거인’이었지요.”

최이사는 지난 1년간 오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가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란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 우리 곁엔 조용히 큰 뜻을 실천하다 간 이름없는 선배들이 있었음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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