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지원금 결정 안팎]人權차원서 재접근

  • 입력 1998년 4월 21일 19시 24분


정부는 21일 일본 군대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정부지원금을 지급키로 함으로써 한일(韓日)관계 발전에 매우 중요한 상징적 조치를 취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민 ‘화해의 손’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결정에는 일본정부가 민간단체들을 동원해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소정의 배상금을 주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뜻도 숨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정부는 군위안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보임으로써 한일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이고 실천적인 인식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같은 결정의 뒤편에는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인식과 철학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김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군위안부문제는 한일간 과거청산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라고 규정하고 “양국정부는 물론 전세계인들이 납득하도록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사실 군위안부문제를 과거사와 이에 따른 피해배상의 차원에서만 인식할 때 해결의 길은 요원했다. 한일 양국은 대일청구권협상을 들먹이며 언제까지나 법리논쟁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따라서 일단 이 문제를 배상의 영역에서 빼낸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결정에 대한 일본측의 화답 여부다. 일본이 이번 결정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한다면 한일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더욱이 양국간에는 어업협정, 일본문화개방, 재일한국인지위, 김대통령의 방일, 일왕(日王)방한문제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정부는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전향적인 조치가 이런 현안들의 논의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결정에 대한 국내 민간단체들의 반응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같은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이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민간 차원의 배상요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한 “가해자는 가만있고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국민 일반의 정서도 있다.

군위안부 지원금 지급안이 당초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통과하기로 돼 있었다가 논란 끝에 이번주에 통과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교통상부는 이런 사정을 감안한 듯 이날 성명을 발표하면서 ‘대일 배상요구 포기’라는 문구를 집어넣지 않았다. 그러나 문구를 집어넣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점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들이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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