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空席』 공기업이 놀고있다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52분


일부 거대 공기업의 인사공백이 수주 및 자금조달 차질 등 자체 경영공백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련기업들의 경영난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전력의 경우를 보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년 3월말로 임기가 끝나는 이종훈(李宗勳)사장의 조기퇴진이 기정사실화했다.

새 정부측이 한전의 새 사장을 공모해 5월중 선임하겠다고 밝히자 현 경영진은 예산집행을 예년의 25% 수준으로 낮췄다.

그 파급은 한전에 ‘목을 매고 있는’ 7백∼8백개의 연관업체들에 미쳤다.

다음은 한전 발주공사를 맡고 있는 한 중소기업측의 얘기.

“작년12월 대통령선거 이후 지금까지 한전 사장이 교체되지 않은 관계로 한전의 예산집행과 직원인사가 지연되고 있다. 작년12월 한전이 발주한 전기공사를 따냈으나 공사를 시작한지 석달이 지나도록 한전에서는 대금지급을 미루고 있다. 입찰조건을 맞추기 위해 5억원을 들여 특수장비까지 구입했는데…. 공사비와 직원급여를 구할 수가 없다. 사채시장에서 급전으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정권교체기의 한전 인사공백이 전기공사업계의 흑자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전 이사장은 지금도 출근은 하고 있지만 지난 16일 후임사장 공모공고가 나가는 등의 ‘경영권 레임덕’ 상황에서 정상적 최고경영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반기 외자차입문제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고 직원들의 근무 분위기도 자연히 이완돼 있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한국중공업의 경우는 정권차원의 무리한 사장퇴진 압력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운서(朴雲緖)사장은 “정권이 바뀌었으므로 사직코자 함”이라는 문구의 사표를 지난달 20일 제출, 지난 15일 주총에서 사임처리됐다.

이에 대해 노조까지도 지난주 청와대에 보낸 정책건의서에서 사장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박사장은 96년3월 한중 경영을 맡은 후 좋은 경영성적을 냈으며 작년10월 발효된 공기업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작년 12월 공모사장으로 재선임됐다.

그의 퇴진에 따라 부사장이 사장대행체제로 경영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5월로 예정된 새 사장 공모후로 미뤄지고 있다.

긴박하게 결정해야 할 수주관련 의사결정 등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들의 얘기.

최고 경영진 부재로 한중이 심혈을 기울여 따낸 해외 설비 수주와 관련된 협상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한중은 이달초 중동지역에서 6억달러 규모의 발전 및 담수화(淡水化)설비를 낙찰받았다.

한중은 미국 및 독일계 등 3개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놓고도 지분과 업무 분담 내용에 대한 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 고위 간부는 “부사장 체제로는 혹시 나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책임문제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3조원매출에 4조4천억원의 수주실적을 올린 대형 공기업의 경영에 이같은 차질이 빚어져서야 되겠는가”고 반문했다.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박정태(朴正泰)사장이 지난달 사표를 제출했으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아 계속 출근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필요한 예산은 4조8천억원 정도. 이중 통행료 수입은 전년도 기준으로 1조3천억원, 정부 재정지원은 9천억원, 나머지 2조6천억원은 채권 발행이나 외자유치 방식으로 자체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채는 겨우 1천5백만원밖에 발행하지 못했고(작년에는 전체 1조5천억원 발행) 외자유치는 별 진척이 없다.

박사장이 사표를 제출한 상태여서 대외 대표성이 떨어지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수출보험공사 석유개발공사 가스안전공사 등도 최고경영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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