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마라톤 8분벽 깼다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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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라톤의 간판 이봉주(李鳳柱)선수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라톤대회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2시간7분44초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면서 당당히 2위로 골인한 것이다. 이날 이봉주선수의 신기록 수립으로 한국 마라톤은 마(魔)의 8분벽을 깨뜨리고 7분대 진입에 성공해 세계신기록 수립의 꿈에 한걸음 바짝 다가서게 됐다.

이봉주선수의 역주는 한국 마라톤이 세계 정상의 위치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선수의 기록은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88년 로테르담대회에서 수립한 세계 최고기록 2시간6분50초에 불과 54초 뒤지는 뛰어난 성적이다. 비록 우승을 놓쳐 아쉽기는 하지만 세계기록과의 격차를 이 정도 줄인 것만으로도 이선수의 선전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선수는 이날 머리에 태극띠를 질끈 동여맨 채 42.195㎞를 달렸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지난 동계훈련도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 어려운 여건에서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결과 일궈낸 한국신기록 수립의 쾌거는 국민 모두에게 분발과 용기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선수의 신기록 수립은 지난 2년여 동안 침체에 빠진 한국 마라톤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96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대회 이후 우리 마라톤은 각종 대회에서 2시간8분대의 기록을 한번도 내지 못하는 극도의 부진을 겪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黃永祚)선수의 은퇴와 이봉주선수의 부상, 유망신인의 육성 실패 등 악재가 겹친 탓이었다. 이번 신기록 수립은 이봉주라는 한 선수의 재기를 보여주는 것에 끝나서는 안된다. 한국 마라톤 전체가 다시 도약하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연말 경제난국 이후 우리 마라톤은 전례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 실업팀이 해체되고 선수층도 얇아지면서 마라톤의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빠른 시일내에 저변인구 확대를 위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마라톤 중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때 전해진 것이 이선수의 신기록 소식이다.

이선수는 앞으로 세계신기록 도전의욕을 밝히고 있다. 28세로 마라톤선수로는 한창의 나이라는 점과 타고난 성실성 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선수 본인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국민의 적극적인 후원이다. 이제 세계신기록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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