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러시아-일본의 「밀월」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52분


1945년 2월 얄타에서 미영소 수뇌들이 만나 2차대전 종전처리를 협의했다.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분할점령은 쉽게 합의됐다. 그러나 극동문제에서는 비밀의정서 방식을 택했다. 동북아지역 대일(對日)전선에 소련의 참전이 명확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독일 항복 후 두세달 내의 대일선전포고를 내세워 두가지 이권을 얻어냈다. 쿠릴열도 반환과 한반도의 미소 분할점령이 그것이다.

▼쿠릴열도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사이를 잇는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징검다리는 교류의 가교 역할 대신 영유권분쟁의 불씨가 돼 왔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와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쿠릴열도 분쟁해결을 포함한 평화조약 추진에 합의했다. 분쟁의 섬에 수산물공장 건립 등 공동개발을 합의한 것이다. 이에 대한 양국 여론의 손익계산이 앞으로 주목거리다.

▼라이벌 열강들의 우호관계는 국제질서의 안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러일정상 합의는 안정보다 재편조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일본은 중국―대만과도 센카쿠(尖閣·중국명 釣魚島)열도 영유권분쟁을 벌여오는 중이다. 우리의 독도까지 자국영토라고 주장한다. 96∼97년 일본은 센카쿠에 해안경비대를 보내 중국 선박을 추방했다. 러일 밀월이 이런 인근 국가들에 압박분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 국제정치다.

▼쿠릴 5개섬은 기후가 혹독하고 자원도 없어 경제가치가 약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초강국 소련에 대한 정치적 견제용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그런 일본이 러시아가 약세고 중국이 강해진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국견제용 센카쿠 카드를 내민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견해다. 동북아는 중국 일본 러시아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다. 빈틈없는 전방위 외교를 설계할 때다.

김재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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