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3명 IMF전후 가계소비]「먹고 살기」 허덕허덕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52분


각 가계의 소비패턴이 꼭 필요한 지출만 하는 ‘기초 생계형’으로 바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소득이 크게 줄고 물가가 급등하자 그야말로 ‘먹고 사는’ 항목에만 돈을 쓰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집집마다 식비 비중(엥겔지수)을 비롯한 생계유지비용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반면 문화 교육 등 자신에 대한 여가형 지출은 격감하고 있다.

전업주부 윤모씨(53·경기 수원시)의 경우.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한달수입이 1백75만원으로 작년보다 45만원이 줄었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 때문에 지난 달 총 생활비는 오히려 작년3월(57만8천원)보다 51.9%나 늘어난 87만8천원을 지출했다.

윤씨는 “작년에는 적금 90만원을 붓고도 72만3천원이 남아 여유자금으로 저축했으나 올해는 여유 자금은 커녕 생활비가 모자라 적금을 깨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비가 이처럼 늘어난 것은 주로 식비와 주거비 때문. IMF체제 이후 식료품비가 크게 오른데다 남편과 두 딸이 일찍 귀가,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식비부담이 부쩍 늘었다. 식단을 간소화하고 음식 재료도 일괄 구입하는데도 식비로만 25만5천원을 지출, 작년 3월의 13만3천원보다 곱절 가까이(90.7%) 더 썼다.

기름값 등 연료비도 크게 올라 식비에 주거비(39만원)까지 합하면 작년보다 26만7천원(70.6%)이 많은 64만5천원을 지출.

결국 줄일 곳은 문화생활비 등 기타경비. 가끔씩 있는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경조사비도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조의금만 내는 등 기타비용을 완전히 줄였지만 나이탓으로 의료비가 대폭 늘어 총액(18만3천원)으로는 작년(16만원)보다 오히려 조금 늘었다.

따져보니 전체 생활비중 식비와 주거비 등 기본생계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5.4%에서 73.5%로 8.1%포인트나 높아졌다. 엥겔지수도 23.3%에서 29.0%로 5.7%포인트가 높아졌다. 생활이 그만큼 각박해지면서 먹고 사는 일에 신경을 많이 쏟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자녀 셋을 둔 전업주부 권모씨(34·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지난 한달 동안 식비 주거비 양육비 등으로 쓴 돈은 작년(64만5천원)보다 27.9%가 늘어난 82만5천원.

총생활비(1백50만원) 자체가 작년(1백20만원)보다 30만원이나 늘어난데다 식비 주거비 양육비 등 기본 생계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53.7%에서 55%로 늘었다. 특히 식비(27만5천원)가 작년보다 66.7% 늘어나는 바람에 엥겔지수도 12.5%에서 18.3%로 높아졌다.

권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이 깎이지 않아 매달 2백20만원이 고정적으로 들어오지만 올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교육비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매달 30만원씩 붓던 적금을 깼다. 맞벌이를 하는 하모씨(33·서울 서초구 방배3동)는 평소 독서 영화 연극감상 등 문화생활에 한달 평균 20만원을 지출하는 등 자기계발과 여가에 관심이 많은 신세대 주부.

그러나 요즘엔 문화생활을 아예 포기, 한푼도 지출하지 않고 있다. 보너스 반납으로 부부 수입이 작년3월 4백만원에서 지난달 2백80만원으로 줄었기 때문. 용돈과 경조사비도 1백5만원에서 62만원으로 41%나 줄였다. 그러나 식비는 아무리 줄여도 60만원에서 50만원으로 16.7% 밖에 줄일 수 없었다.

총생활비는 2백40만원에서 1백77만원으로 줄었다.

하씨는 “줄일 것을 다 줄이고 보니 엥겔지수가 25%에서 28.2%로 높아진 반면 생활을 여유롭게 하고 자신을 계발하는 지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소비패턴 변화에 대해 서용구(徐鏞求)산업연구원 유통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앞으로도 소득이 계속 감소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생계유지형 소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연구원은 “그동안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만 생각해서 지출을 분수에 넘게 해온 측면도 있다”며 “IMF 체제가 가계 지출의 거품을 빼 소비를 건전화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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