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인간승리/이봉주]불굴의 승부사「화려한 재기」

  • 입력 1998년 4월 20일 06시 50분


“이제 나는 더이상 2인자가 아니다.”

동갑내기 황영조(黃永祚)의 그늘에 가려있었던 93∼95년, 불과 3초차로 투과니(남아공)에게 져 은메달에 그쳤던 96애틀랜타올림픽, 그리고 부상으로 뛸 수 없는 다리를 내려다 보며 몰래 눈물을 쏟았던 지난해. 이봉주(李鳳柱·28·코오롱)는 그 모든 것을 19일 로테르담대회에서 한국신기록과 함께 훌훌 털어버렸다.

이날 2시간07분44초로 4년만에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에 뛰어들면서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해냈다. 해내고야 말았다”고.

이봉주가 마라톤에 혜성같이 나타난 것은 93년 전국체전때. 충남 방천고때 육상을 시작, 서울시청에서 마라토너로 입문한 그는 이 대회에서 2시간10분27초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93호놀룰루대회에서 우승한 뒤 그는 코오롱으로 옮겼다. 이후 그는 독사라 불리는 정봉수감독의 조련아래 본격적인 마라토너의 길에 들어섰다.

95동아국제마라톤에서 역대2위기록인 2시간08분26초로 우승했지만 이봉주는 여전히 황영조에 가려있었다. 96동아국제마라톤에서 마르틴 피스(스페인)에게 1초차로 뒤져 2위, 이해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다시 투과니에 이어 2위에 그치면서 새로 붙은 별명이 ‘만년 2인자’.

96년 12월 일본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눈보라를 뚫고 1위로 골인하며 시선을 모은 것도 잠시. 무리한 훈련으로 마라토너로서 치명적인 무릎부상이 그를 덮쳤다. 작년초 무릎수술에 이어 출전한 동아국제마라톤에선 13위라는 참담한 성적.

그의 외로운 질주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더이상 스포트라이트는 없었다. 한강 둔치에서 강바람을 마주한 채 하루 50㎞씩 쉬지 않고 달렸다. 7개월만에 출전한 춘천국제마라톤에서 5위. 아무도 그의 성적에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그는 내심 자신했다. 다리에 다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지난 겨울의 김천 전지훈련을 그는 잊지 못한다. 몇달동안 깎지 않은 바람에 텁수룩한 수염. 바싹 마른 얼굴. 잠을 깨면 달렸다. 훈련이 끝나면 죽음처럼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깨면 또 달렸다.

그는 달릴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로테르담에서 그는 내내 황영조를 떠올리며 타들어가는 입술을 다시 깨물었다. 이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더이상 그늘에 가려있지는 않겠다고. 그리고 그는 자신과의 승부에서 이겼다.

결승선에 뛰어든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할 때까지 나는 결코 웃을 수 없습니다. 한국신기록은 나에겐 그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그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았다. 진정한 그의 달리기는 바로 이제부터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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