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금융기관 「잇속차리기」

  • 입력 1998년 4월 19일 21시 16분


자율 속에서 건전하게 움직이는 금융시장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한 나라의 경제구조를 파악할 때 금융시장을 먼저 들여다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경제회복의 근간으로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건전한 금융시장 육성을 최대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몇가지 우려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몇몇 대형 투자신탁회사들은 지나친 고금리 상품 경쟁으로 국내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 며칠전 연 수익률 20% 이상의 상품 판매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일부 투신사는 여전히 21∼22%대의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며 거리에서 선전 유인물을 뿌리는 등 치열한 수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도 ‘자기 잇속’만 차리기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들이 제출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서 중에 매각 예정 계열사가 포함돼 있으면 여지없이 해당 계열사에 빌려준 빚을 즉시 갚으라고 야단이다. 은행을 믿고 경영계획서를 보여줬더니 ‘뒤에서 후려치는’ 격이다. 신뢰상실의 단면이다. 또 일부 은행은 외국 금융기관들로부터 가산금리 2%대의 낮은 금리로 만기 연장을 받고도 국내 기업들에는 10∼18%의 가산금리를 붙여 대출하는 배짱을 보인다.

국내 금융권은 줄곧 정부에 금리를 포함해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한국은행은 이를 받아들여 16일부터 금리통제정책에서 한 발 물러나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회사채 금리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자율에 맡겼더니 고금리 상품 판매전이 더욱 가열됐기 때문이다. 서로 믿음을 잃고 경제와 시장 전체보다는 자신만 생각하는 금융기관의 행태는 스스로 ‘관치금융’을 자초한다는 점을 금융권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반병희<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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