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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홍/폴 포트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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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홍/폴 포트의 부메랑

입력 1998-04-17 19:44수정 2009-09-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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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캄보디아인들 중에는 시각장애인이 많다. 전문의들의 진단은 시각거부증. 인간으로서 못볼 일들을 너무 많이 본 충격 때문에 생긴 신경성 질환이다.

특히 이들에게 시각거부증을 안겨준 것은 가족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광경이었다. 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 곳곳에서 벌어졌던 2백여만명의 생죽음이 그것이다. 공산주의 망령에 빠진 동족에게서 전인구의 4분의 1이 도륙당했다.

▼뉴욕 타임스의 샌버그기자는 74년 캄보디아 내전 취재차 특파된다. 그는 현지인 프란을 고용해 수차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취재했다. 내전은 폴 포트, 키우 삼판, 손 센 등이 이끄는 크메르 루주와 친미성향의 론 놀정권 사이에 벌어졌다. 퓰리처상을 받은 샌버그의 현장감넘치는 기사 내용을 극화한 영화 ‘킬링 필드’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폴 포트도 ‘세계적인 인물’이 됐다.

▼폴 포트는 49년부터 4년간 정부장학생으로 프랑스에 전자공학을 배우러 갔다가 공산주의에 심취해 돌아왔다. 농민의 아들인 그의 머리 속에서는 공산주의와 루소적 자연주의가 결합됐다.

그의 집권 동안 ‘농민 유토피아’ 구호 아래도 시민들이 집단농장으로 내쫓겼으며 지식인들은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만으로 숱하게 처형당했다. 이데올로기 속의 이상향으로 가야 한다며 광기를 부렸다. 후진국 공산주의자 중에서도 그는 ‘선무당’이었다.

▼97년7월 그는 30년 동지인 손 센 전국방장관과 그 일가족 14명을 무참히 처형했다. 이유는 그가 정부군과 협상을 기도했다는 것. 희생자 중엔 젖먹이까지 포함됐다. 당시 전황도 불리해 폴 포트 일당은 정부군에 쫓겨 태국으로 도주해야 할 판이었다. 태국이 그들을 받아줄 리 없었다. 폴 포트의 부하들은 등을 돌려 그를 체포해버렸다. 악행의 부메랑은 던진 자에게 되돌아가는가. 그 폴 포트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김재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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