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지급보증」실태조사]與,「개혁부진」불만 폭발

  • 입력 1998년 4월 17일 19시 28분


3월중에 이루어진 대기업 계열사간 상호채무보증(상호지급보증)을 둘러싸고 정부 여당과 금융권이 또 한차례 맞섰다.

여당은 “은행장 등의 인사에 반영하겠다”면서 신규 상호빚보증이 늘어난 것을 문제삼겠다고 나섰다.

사태 진전에 따라 금융권이 큰 파장에 휩싸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민회의에 들어온 제보 내용대로 3월중 금융기관이 기업에 상호지보를 많이 요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데 뭐가 문제냐”며 반발하면서도 당국의 인사 연계방침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월중 상호지보 실태〓30대 그룹 상장계열사들의 3월중 상호지보 금액은 1조3천8백94억원.

쌍용양회의 경우 그 금액이 7천3백83억원에 달하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각각 2천70억원과 1천억원에 이른다.

비상장계열사를 포함하면 상호지보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다른 대기업간에도 상대방의 채무를 상호지보했다’는 제보내용이 사실이라면 1조4천억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은 “3월중에 이루어진 상호지보 중에는 신규대출을 하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기존 대출의 만기가 연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 많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기업관계자들은 “신규대출을 하면서 상호지보를 요구한 사례는 물론 심지어 채무보증을 받지 않고 이미 나갔던 대출에 대해서도 은행측이 채무보증을 강요한 사례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S그룹 우량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채무보증을 서지 않으려 했으나 은행측의 등쌀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채무보증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 계열사의 경우 3월에 신규 대출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룹경영(회장실 기조실) 해체 등에 불안을 느낀 금융기관들이 기존 대출분에 대해 ‘우량계열사의 채무보증을 받아오지 않으면 대출을 무조건 회수하겠다’는 압력을 가했다”고 덧붙였다.

또 H그룹 우량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모 종합금융사가 계열사에 신규대출을 해주면서 채무보증을 받아올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 상호지보를 했다”고 밝혔다.

▼정부 여당의 입장〓여권이 은행장 퇴진종용 등 강경대처키로 한 것은 금융권과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속도가 내심 못마땅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은행측이 상호지보를 요구해 마지못해 섰다’는 것이 기업의 해명이지만 기업들도 상호지보 해소에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라는 게 국민회의측 시각이다.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확인 절차는 남아있지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금융권과 기업들이 아직도 현정부의 개혁조치를 ‘일회성 개혁’ ‘1년 뒤면 유야무야될 개혁’으로 깔보고 있다는 증거”라며 흥분했다.

여권은 이번 실태조사를 금융권 개혁을 통해 대기업 개혁으로 가는 ‘도화선’으로 삼는다는 복안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상당수 부실은행의 행장이 연임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금융권 체제로는 기업들의 구조개혁을 견인하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다.

여권은 은행권의 개혁의지가 부족할 경우 결국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경우 대량실업으로 불만이 커질 노동계를 설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정권차원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권은 ‘상호지보 요구와 방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면 이를 ‘죄상(罪狀)’으로 제시하면서 연임된 은행장들을 퇴출시킨 뒤 개혁성향의 인물을 은행권에 전진 배치시킨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이 2.8%에 불과한 대동은행 허홍(許洪)행장이 15일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 퇴진한 것도 여권의 이같은 복안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반응〓금융권은 여권과 정부가 상호지보를 4월 이후부터 전면금지하기로 해놓고 그 이전에 이뤄진 것까지 문제삼는 것은 일관성 없는 졸속정책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금융권은 특히 “새 정부가 툭하면 ‘인사연계’를 운운한다”며 불만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여권이 은행장을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갈아치우기 위해 조그만 일도 과장하면서 ‘인사조치’를 들먹거리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공종식·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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