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이광형/토론식 수업으로 바꿔보니…

  • 입력 1998년 4월 16일 20시 29분


4월이다. 얼었던 대지에서 새싹이 솟아오르고 라일락 꽃향기 가득한 4월이 왔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도 자연의 이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눈부시던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진달래와 개나리 꽃잎도 봄볕에 졸고 있다. 이 정도로 날씨가 풀리고 황사도 걷히면 잔디밭에 나가 야외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학기에도 토론식 수업을 하고 있다. 발표력을 늘리고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해 작년에 적용하여 호평을 받았던 수업방식이다. 사실 그 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내탓’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주범은 입시제도일 뿐 내 강의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배워왔던 것처럼, 준비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질문이 있으면 받아주는 것으로 내 임무는 다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수업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토론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공학 교육에서 토론식이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대학 2학년 과목인 ‘데이터구조’시간에 시도해보기로 하고 준비했던 강의록을 고쳐썼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먼저 오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생각해보고 발표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정하여 시켰더니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 알고는 있는데 발표하는 것이 어색해서 손을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작전을 바꾸었다.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학생은 내용이 맞든 틀리든 성적에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고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전자메일에는 불만의 소리가 끊임 없이 올라왔다. 이름을 적는 것은 자발적인 수업이 아니다, 발언할 거리를 생각하기 위해 한시간 동안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너무 힘들다, 좋은 생각이 났어도 타이밍을 놓치면 허사가 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수업을 이렇게 진행하니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배우는 양이 적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나는 이런 의견들을 의식해서 간간이 강의주제와 거리가 있는 인생과 사회문제 등에 대하여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수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식으로 거리감이 없어지자 서서히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발표자가 많아 나는 교통정리에 바쁠 정도였고 한시간에 적어야 하는 이름이 열댓명에 이르게 되었다. 학기말에 치른 시험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가르치는 양이 적어서 점수가 나쁘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나를 놀라게 했다. 객관식 평가는 그 이전에는 받아보지 못했던 점수를 주었고 서술식 평가는 그 이상이었다. 거의 모든 평가서가 찬사 일색이었고 심지어 “13년동안 받은 수업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수업이었다”는 평까지 듣게 되었다.

이런 평가에 용기를 얻어 이번 학기 ‘시스템모델링’과목도 토론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이름을 적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원 수업이라 소규모이고 학생들이 좀더 자발적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수업시간 내내 경쟁적으로 뭔가 발표하기 위해서 반짝이고 있는 눈동자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한시간 동안 긴장하고 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다음주에는 날씨도 좋아질 모양이니 야외수업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바꿔봐야겠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전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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