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政爭으로 허송…주요 법안 250건 『낮잠』

  • 입력 1998년 4월 16일 2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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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대책마련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제쳐둔 채 정쟁(政爭)에 얽혀 표류하고 있다.

특히 여야는 지난 20여일 동안 서로의 정략적 이해가 맞물려 있는 통합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지루한 협상을 벌였으나 그나마 15일 막판 타결단계에서 한나라당이 내부의견 조율에 실패, 본회의 통과가 무산됐다.

국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소모적 정쟁을 시작한 뒤 추경예산안만 간신히 처리했을 뿐 실업대책 마련 등 서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민생현안 처리는 등한시해 왔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변호사들의 세율인상을 위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및 소득세법 개정안, 소비자보호법 개정안, 농지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안 등 모두 2백50여건에 이르고 있다.

국회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대목은 국제통화기금(IMF)위기속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인 실업대책 마련에 국회가 무관심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는 지난달 말 환경노동위에서 일부 야당의원들의 발의로 실업대책특위를 구성키로 잠정 합의했으나 아직 위원 선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5일 3당총무회담에서도 여야는 기존의 국제경쟁력강화특위를 실업대책 및 경제구조개혁특위로 바꾸기로 재합의했으나 여야간 정쟁이 계속되는 상황속에서는 언제 특위가 구성될지 불투명한 실정이다.

환경노동위의 한 의원은 “실업수당의 지급과 실직자 생활안정자금 대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상을 뻔히 알면서도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난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신산업 창출을 위한 산업구조조정 △실직자 재훈련 △제2의 ‘환란(換亂)’방지를 위한 국제신인도 제고방안 △외국투자가들의 자유로운 퇴출을 보장하기 위한 인수합병(M&A)관련 규정 보완 등 여야가 공조,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무더기로 무관심속에 잠자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국회 표류 상황은 야당의 ‘발목잡기’식 대응과 여당의 무리한 정국운영이 맞물린 결과다.

여야는 이번 통합선거법 협상에서도 다가올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 등에서의 정략적 이해를 겨냥, 연합공천 금지 규정과 기초단체장의 임명제 전환문제를 놓고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섰다.

‘DJP’의 연합공천이 이뤄질 경우 수도권 지역에서 절멸(絶滅)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야당이나 ‘수도권 싹쓸이’를 노린 여권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다.

특히 야당은 총무회담 합의사항을 총재단회의에서 추인했는데도 의원총회에서 일부 강경의원들의 반대로 백지화하기로 결정, 의회주의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를 보였다.

여당도 야당의 적극적인 국정협조가 필요한 상황속에서 야당에 대한 의석수만큼의 대우나 대화를 통한 적극적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아 정국을 꼬이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여야의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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