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98)

  • 입력 1998년 4월 16일 19시 31분


제11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23〉

램프에 불을 밝힌 마르자나는 우선 식료품 저장고로 달려가 묵은 술을 꺼내어 왔다. 그리고 그 술에다가는 독한 수면제를 탔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것을 들고 다시 안마당으로 가 서른 일곱 개의 독을 열고 한 잔씩 술을 넣어주며 속삭였다.

“당신의 두목님께서는 당신들한테 술 한 잔씩을 갖다주라고 했어요. 날씨가 추우니 몸을 좀 데우라고요.”

독 속에 든 도적들은 그녀가 넣어주는 술을 단숨에 쭉 들이켜고 빈 잔을 돌려주곤 했다.

서른 일곱 명의 도적들에게 골고루 한 잔씩 수면제를 탄 술을 먹인 마르자나는 이제 세탁할 때 쓰는 커다란 가마솥 밑에 열심히 불을 지폈다. 그리고 기름장사의 기름독에서 올리브 기름을 퍼다가 가마솥에 가득히 채웠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쉬지 않고 불을 땠다.

충분히 기름이 끓어오르자 그녀는 커다란 들통 하나에 그 펄펄 끓는 것을 채워가지고 안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른 일곱 개의 독을 차례로 열고 그 속에다 한통씩 끓는 기름을 퍼부었다.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산적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서른 일곱 명의 도적들을 모두 죽여버린 마르자나는 이제 뒷정리를 했다. 그녀는 우선 서른 일곱 개의 독에 야자 섬유 뚜껑을 씌워 전과 같이 해 놓았다. 그리고는 아궁이의 불도 껐다. 모든 것이 끝나자 그녀는 일이 돌아가는 추이를 살피기 위해 등불을 끄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아니나다를까, 기름장사가 잠자고 있는 방의 창문이 열렸다. 그 창문은 안마당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이었다. 기름장사는 집안의 동태를 살피는 듯 고개를 내밀고 밖을 둘러보고 있었다.

집 안 어디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죽은 듯이 조용한 것을 확인한 두목은, 이제 이 집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부하들을 일으켜 계획했던 일을 실천에 옮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부하들에게 일러두었던 대로 가지고 있던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그가 던지는 돌멩이들은 독에 가 맞으면서 작은 소리를 냈다.

서른 일곱 개의 독에 일일이 돌멩이를 던지고 난 두목은 부하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곧 부하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나타나리라는 것을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한 놈도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되자 두목은, 놈들이 모두 독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다시 돌멩이들을 던졌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놈이 없었다. 부하들이 모두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두목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미련한 놈들! 이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들이란 말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마침내 안마당으로 내려와 서른 일곱 개의 독이 있는 데로 갔다. 그러나 그는 독 뚜껑을 열려다 말고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독에서는 사람의 몸이 타고 있는 지독한 냄새와 함께 뜨거운 기름이 솟구쳐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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