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 (697)

  • 입력 1998년 4월 16일 07시 21분


제11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22〉

처음에 마르자나는 기름 독 속에 바가지가 엎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기름 독 속에는 흔히 기름이 출렁거려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바가지 같은 걸 엎어서 띄워놓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가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르자나의 기름통에 부딪히는 순간 그것은 놀란 듯이 움찔하면서 이런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두목님이 던진 것은 작은 돌이 아니라 바위만 하구나. 자, 이제 때가 왔다. 나가보자.”

이렇게 말하며 그것은 머리를 내밀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기름 독 속에 기름 대신 사람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마르자나로서는 처음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집안 사람들은 다 죽었구나!”

그러나 원체 머리가 좋고 침착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녀는 큰소리를 질러 소란을 피우는 대신 독 위로 몸을 구부리고 속삭였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당신의 두목님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아직은 일을 벌일 시간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두목님께서 잠에서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러자 독 속에 든 사내가 말했다.

“고맙소. 그런데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래서 마르자나는 다시 말했다.

“저는 당신의 두목님께서 부탁하신 말을 전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당신의 두목님께서는 잠들기 전에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저에게 디나르 금화를 두 닢이나 주셨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마르자나는 독 뚜껑을 닫아주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빠른 마르자나는 사태의 추이를 곧 간파했다. 사태는 여간 다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태의 심각성을 좀더 정확히 알고 싶어졌다. 말하자면 상대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긴 했지만 나머지 서른일곱 개의 독 뚜껑을 모두 열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두번째 독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한차례 심호흡을 한 뒤 그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뛰어나오려고 하는 머리가 만져졌다. 그러한 그에게 그녀는 다급하게 속삭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직은 일을 벌일 시각이 아니니까요.”

이런 말을 하고 그녀는 곧 뚜껑을 닫았다.

이렇게 차례로 독을 열어본 결과 서른일곱 개의 독에 도적의 머리가 들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의 독에만 올리브 기름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아냈다.

진짜 기름 독이 어느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낸 그녀는 아주 침착하게 자신의 기름통에 기름을 채웠다. 그리고 그 기름통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우선 램프에 불을 밝혔다. 램프에 기름을 붓고 불을 켜면서도 그녀는 이 절박한 위험을 타개할 적절한 방법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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