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회담 중간결산]北측 「성의표시」가 열쇠

  • 입력 1998년 4월 15일 19시 45분


베이징(北京) 남북차관급 회담은 이제 북측이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면회소와 우편물교환소 설치에 과연 어느 정도 성의를 표명하느냐에 따라 타결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남북은 11일 첫 회담에서 대북(對北)비료제공과 이산가족교류 등 상호관심사를 병행 논의하자는 원칙에 합의했으나 그후 북측이 비료제공 문제가 먼저 타결되지 않으면 다른 의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버텨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다.

북측의 전금철(全今哲)단장은 “비료를 주면 대화 풍년이 들 것”이라며 회담의 초점을 집요하게 비료에 맞추고 있다. 북측이 이번에 요구하고 있는 비료의 양은 1월 방북했던 ‘옥수수박사’ 김순권(金順權)경북대교수를 통해 우리측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던 20만t보다 훨씬 많은 50만t이다. 전단장은 그러나 “많을수록 좋지만 남측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최소한 20만t 이상을 얻기 위해 협상용으로 50만t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15일은 북한 최고의 명절인 태양절(김일성의 생일). 그럼에도 북한대표단은 귀국하지 않고 베이징에 머물렀다. 이것은 비료확보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우리측의 정세현(丁世鉉)수석대표는 “20만t의 비료가 제공되면 북한의 올해 식량생산량은 80만∼1백만t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밝힌 지난해 곡물생산량이 2백68만5천t(우리 정부 추산은 3백48만9천t)이고 보면 20만t의 비료는 북한의 식량사정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양이다.

우리측은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을 들어 20만t을 이산가족 교류문제 등과 연계해 3단계로 나눠 주겠다는 입장이다. 즉 북측이 가장 부담을 덜 느낄 만한 우편물교환소와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에 대해 언제쯤 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대북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당초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의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으나 북측의 입장을 고려, 보다 신축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날짜를 못박으라고까지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어떤 형태라도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담보’ 없이 비료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형편도 전과 같지 않아 20만t의 비료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런 식으로 비료를 줬다가 돌아올 국내여론의 반발을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95년에도 쌀 15만t을 주고서 아무것도 얻지 못해 여론의 거센 공격을 받았었다.

북측은 “비료문제는 인도적 문제이고 이산가족문제는 정치논리가 개입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산가족 교류야 말로 어떤 선행 조건 없이 최우선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인도적 문제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들이다.

〈베이징〓한기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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