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배상책임 포기 안된다

  • 입력 1998년 4월 15일 19시 45분


정부의 일본군대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문제가 국무회의에 상정됐다가 보류되는 혼선을 빚었다. 한일관계의 해묵은 현안인데다 예민한 국민정서까지 얽혀 있는 중요한 외교문제를 관계부처나 피해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국무회의에 상정한 것도 그렇고 국무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에 마치 자랑이나 하듯 일본측에 사전통보한 외교통상부의 성급한 처사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무회의가 단순한 ‘통과회의’가 아니라 국정에 관한 난상토론의 장(場)임을 실증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의 배상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 정부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국가배상을 한사코 거부하는 일본정부에 우리가 ‘모범’을 보이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가난과 질병 속에서 보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정부의 책임을 다한다는 뜻에서 지원금 지급결정은 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민간단체의 위로금 유혹으로부터 그들을 지킨다는 의미도 크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일본정부에 배상책임을 묻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군대위안부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급하다고 해도 배상책임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이를 완전히 묻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에서는 위안부문제는 논의되지도 않았다.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위안부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가 이 문제를 일본정부에 의한 전쟁범죄와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일본정부의 국제법적 책임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권고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극우파들은 위안부가 ‘상행위’였으며 ‘공창제도’의 하나였다고 망언을 해댔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성과 사과가 나올 수 없다. 책임이 없다는데 어떻게 반성과 사과 요구가 먹혀 들겠는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급하다. 그리고 그 관계개선에 우리가 주도적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를 묻어버리고 넘어갈 수는 없다.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일본의 위안부 국가배상이 한일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면 다른 현안부터 다루도록 하면 된다. 그렇더라도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을 면제해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역사는 결코 정치로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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