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손의 종부로, 8남매의 어머니로 고생하신 줄만 알았는데…. 그처럼 몇차례나 죽음의 질곡까지 넘어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나약하게 살았던 자신이 미워 더 슬프게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서나 입이 앞서가는 똑똑함이 묵언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 병마와의 사투 등 그 일생의 파노라마를 어찌 이루 형용할 수 있을까요. 강인하지 못해 좌절하던 저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기름진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제가 병마를 이기고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기적은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병마에 들고 나서 그렇게도 내 소유라고 철저히 집착했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들이었는지, 인간의 욕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신 것도 어머니였습니다. 내 것이라고 애착을 갖던 것들이 바로 저의 건강과 목숨마저 잠식하는 것들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기쁨과 행복은 물론 슬픔과 여읨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음, 그 자체라는 것도요.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자기집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는 동화처럼 이제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욕심 없는 침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소리없이 소복이 쌓이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가난도 고뇌도 행복도 아름다움과 인내마저도 조용히 침묵 속에 담으렵니다.
장동금(광주시 농성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