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장동금『어머니가 다시 일어설 용기주셨죠』

  • 입력 1998년 4월 15일 07시 33분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저는 얼마동안을 친정에 누워 있었던가요. 저승까지 다녀온 창백한 딸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어머니는 팔십평생 침묵 속에 묻어 두었던 지난날들을 가만가만 이야기해 주셨지요.

대종손의 종부로, 8남매의 어머니로 고생하신 줄만 알았는데…. 그처럼 몇차례나 죽음의 질곡까지 넘어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나약하게 살았던 자신이 미워 더 슬프게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서나 입이 앞서가는 똑똑함이 묵언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 병마와의 사투 등 그 일생의 파노라마를 어찌 이루 형용할 수 있을까요. 강인하지 못해 좌절하던 저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기름진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제가 병마를 이기고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기적은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병마에 들고 나서 그렇게도 내 소유라고 철저히 집착했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들이었는지, 인간의 욕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신 것도 어머니였습니다. 내 것이라고 애착을 갖던 것들이 바로 저의 건강과 목숨마저 잠식하는 것들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기쁨과 행복은 물론 슬픔과 여읨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음, 그 자체라는 것도요.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자기집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는 동화처럼 이제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욕심 없는 침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소리없이 소복이 쌓이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가난도 고뇌도 행복도 아름다움과 인내마저도 조용히 침묵 속에 담으렵니다.

장동금(광주시 농성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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