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당의 아파트 앞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지하철로 출근한 서울 K보험사 정모과장(35). 자리에 앉으려다 책상위에 놓인 2장의 우편물에 눈길을 보낸다. 얄팍해진 지갑의 무게를 왼쪽가슴에 실감하며 ‘세금고지서’를 뜯는다. “이달들어 네번째, 이 친구는 5만원, 이 사람은 3만원….”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간다. 96년 한해 동안 전국민이 지출한 결혼축의금은 약 3조1천5백53억원. 올해 정부예산 75조4천6백36억원의 4.18% 수준(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거대한 ‘축의금 시장’을 움직이는 원리는 무엇일까.
‘결혼축의금의 경제학.’
◇ 심리적 적정선 ◇
한국전력에서 94년 부장으로 퇴직한 이모씨(65). 다음은 그가 지난 8년간 매년 결혼축의금으로 지출한 금액.
△90년〓3백66만원 △91년〓3백20만원 △92년〓4백9만원 △93년〓4백13만원 △94년〓6백51만원 △95년〓4백21만원 △96년〓4백25만원 △97년〓4백58만원.
50대중반에서 60대중반은 자녀들의 결혼을 전후해 일생 중 가장 적극적으로 결혼식을 쫓아다니는 시기. 퇴직전 연봉이 4천만원 수준이었던 이씨의 경우 축의금 지출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연봉의 10%인 4백만원선으로 지출액을 조절했었다.
현재 연봉 2천5백만원, 한달평균수입 2백만원 남짓한 L전자 정유철대리(32). “한달에 내는 축의금의 총액으로 10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강석훈교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체수입의 10% 정도를 축의금의 ‘심리적 저항선’, 5% 정도를 ‘심리적 적정선’으로 머릿속에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다음은 강교수의 축의금경제학.
◇ 축의금액 어떻게 정해지나 ◇
축의금 1회의 액수는 ‘심리적 적정선’인 매달 수입의 5%를 한달에 내야할 횟수로 나눈 금액 주변에서 형성된다. 월 2백만원짜리 봉급생활자라면 5%인 10만원을 책정, 한달평균 3번 낼 때 회당 3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느끼는 것. 4촌이내의 친척이나 사업상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에 내는 ‘고액축의금’을 제외하면 어느 시대든 축의금의 1회 금액은 3등급으로 나눠진다.
다음은 한국전력에서 37년째 근무하고 있는 배모부장(56)이 기억하는 시대별 축의금액. △95년 이후〓5만 3만 2만원 △90년대 초반〓3만2만1만원△80년대〓2만1만 5천원 △70년대〓5천 3천 2천원중 한가지.
어느 등급을 선택할지는 결혼당사자나 부모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결정된다.
①적극적축의금〓4촌 안쪽의 친척이나 상당히 친밀해 ‘무시할 수 없는 관계’일 때 내는 1등급 축의금액 ②의무적축의금〓‘멀지도 가깝지도 않은’관계일 때 내는 보편적 축의금액 ③면피성축의금〓모른 체 할 수 없어 마지못해 내는 최하 축의금액.
적극적축의금은 의무적축의금의 2배를, 의무적축의금은 면피성축의금의 2배를 각각 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된다. 또 축의금 액수는 인플레와 화폐가치의 하락을 반영한다. 현재의 축의금은 70년대에 비해 10배 증가했다.
◇ 축의금의 변수(變數)들 ◇
▼자녀수〓자녀의 숫자는 축의금의 총액을 크게 좌우한다.‘개혼(開婚)’인 첫번째 자녀의 결혼식에 가장 많은 축의금이 몰린다. 둘째, 셋째 자녀의 축의금은 첫째의 60∼70%, 넷째부터는 50%이하로 떨어진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부모가 직장을 갖고 있어 사회적 영향력이 있을 때가 퇴직했을 때보다 2∼4배 많이 들어온다.
▼인간관계〓부모가 평생 쌓아놓은 ‘인간관계의 성공도’가 축의금 총액을 좌우한다.
▼결혼횟수〓이혼의 증가로 결혼횟수가 의미있는 변수로 등장했다. 재혼시의 축의금액은 초혼시의 30∼50%선.
◇ 조혼(早婚)과 만혼(晩婚),어느쪽이 유리한가 ◇
조혼이 유리. 경제전문가들은 “부조금은 화폐가치의 하락분을 메워줄 만큼 빠른 속도로 오르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현금’을 먼저 챙기는 것이 이익”이라고 설명한다. 하객이 줄고 축의금도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IMF시대에 만혼자녀를 둔 부모는 더욱 ‘손해’볼 가능성이 있다.
〈박중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