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공조」 맹세 금가나?…자민련,소외감 표출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현정권의 존립기반인 ‘DJT공조’가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집권 전 굳건했던 ‘맹약(盟約)’과는 거리가 먼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일보후퇴로 간신히 가닥을 잡은 단체장후보 선정 마찰은 표피적인 한 사례에 불과하다.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서리가 그동안 DJ의 거듭되는 설득을 뿌리친 것은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의 신조로 미뤄볼 때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묘한 긴장관계는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양자간, 넓게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양당간 불신의 벽은 신정부 출범과 동시에 생성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양당은 조각단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왔다. JP는 조각 당시 DJ가 핵심부처를 국민회의몫으로 주장하자 한발 양보하기는 했지만 행정자치부와 문화관광부까지 요구한데 대해 “DJ가 너무 욕심을 부린다”며 못마땅해했다는 후문이다.

또 후속인사에서 요직을 호남인사 일변도로 인선한 것이나 초기 산하단체장 인선과정에서 자민련을 소외시킨 것도 자민련으로서는 불만이었다.

여기에 DJ에 대한 JP 개인의 서운한 감정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JP는 총리인준과정에서 DJ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DJ가 JP의 주례보고 석상에 청와대 관계자를 배석시켜 ‘독대’의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을 배제한 채 자민련 박태준(朴泰俊·TJ)총재와 정치현안을 논의하는 것도 JP로서는 기분좋을 리 없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상하관계이며 정치파트너는 공식채널인 TJ다”면서 “소액주주인 자민련에 그만큼 배려했으면 된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은 집권 이후 권력배분과 공조형태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차가 생겼음을 입증한다.

단체장 선정문제로 빚어진 DJ와 JP간 대립은 향후 정국운영과 관련한 기(氣)싸움의 성격이 강하며 양당 모두 최기선(崔箕善)인천시장의 영입이 실질적인 목표였다는 점도 이와 맥락이 닿는다. 양당은 최시장을 영입할 경우 인천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반입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계개편, 내각제 개헌, 16대 총선 등 장기적인 정치일정상 주도권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제로 국민회의뿐만 아니라 JP도 측근인 K의원 등을 앞세워 인천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영입작업을 활발히 벌여왔다. 이와 관련, 최시장의 한 측근은 “현재 동요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에 반반씩 간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아무튼 수도권 자치단체장 공천을 둘러싼 갈등을 간신히 봉합했지만 이번 갈등은 DJP공조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최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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