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서울은 「보행三不」…불안-불편-불리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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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오전 1시50분경. 김모씨(65)는 지방나들이를 다녀오는 아들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용산구 동자동 한강로 D주유소 앞. 기차 도착시각이 임박해 마음이 조급해진 김씨는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시속60㎞ 속도로 내쳐 달리다 그만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모씨(28·여)를 들이받고 말았다.

이씨는 동대문시장으로 새벽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횡단보도의 녹색신호를 확인하고 길을 건넜는데도 김씨가 신호를 무시하는 바람에 변을 당한 것. 이씨는 지금 의식불명상태다.

같은 날 오후 7시50분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종합상가 앞 횡단보도에서도 직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한모씨(25·여)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시내버스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우리나라 등록차량은 지난해 이미 1천만대를 넘어섰다. 외형적으론 ‘자동차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행자를 생각하고 다른 차에 양보하는 교통문화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동안 자동차 통행의 효율만을 강조, 횡단보도를 없애고 육교나 지하도를 설치해온 교통정책도 사고를 부추긴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약자 장애인은 물론 일반인도 ‘불편한 육교’를 이용하기 보다는 무단횡단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사고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후진국형 자동차 문화는 고스란히 보행자 피해로 이어진다. 보행자는 언제 어디서 ‘흉기’로 변할지 모르는 자동차의 위협을 받고 산다.

교통전문가들이 서울을 가리켜 걷는게 불안하고 불편하며 차를 타는 것보다 훨씬 불리한 ‘보행삼불(步行三不)의 도시’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고통계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1천6백3명. 이 중 4천4백58명이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숨졌다.

다행히 전체 교통사고 가운데 보행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90년 52.3%, 95년 44.2%, 97년 38.4%로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4∼5배 높다.

과속을 일삼고 보행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운전자가 많은 상황에서 보행자의 교통법규 위반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지난해 차에 치여 숨진 보행자의 절반가량은 무단횡단을 했거나 신호를 무시한 경우였다.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최정한(崔廷漢)사무총장은 “차량소통 위주의 교통체계를 이제 보행자 중심으로 바꿀 때가 됐다”며 “보행자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법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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