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포영화축제」11일 개막…추억의 토종귀신 총출동

  • 입력 1998년 4월 13일 09시 09분


목 없는 귀신, 천 년 묵은 해골…. 원한에 사무친 토종 귀신들을 한밤중에 만나보자.

‘싸구려’로 천대받던 한국의 공포영화들. 어쩌다 한 번씩 TV에서 납량특집때나 틀어주는 이 영화들을 어엿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심야에 허리우드극장에서 진행하는 ‘한국공포영화축제’가 그 무대.

11일 밤12시. 5백석의 좌석이 다 매진돼 그냥 돌아간 사람만 해도 1백여명. 곧 개봉(25일)될 영화 ‘조용한 가족’이 축제의 문을 열었다. 이 영화는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 스릴러와 코미디를 뒤섞은 재치있는 솜씨로 객석을 오싹한 공포와 웃음바다로 몰아넣었다.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와의 만남의 시간에 이어 5시간동안 ‘흡혈귀 야녀’ ‘하녀의 방’ 등의 공포영화가 상영됐다.

18일에는 밤12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고 김기영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어설프지만 B급 영화의 재치가 담긴 ‘관속의 드라큘라’ 등이 상영된다.

주최측은 이미 올해초 소극장 마녀에서 두차례 ‘공포영화 심야극장’을 열었던 전력이 있다.

바닥에 카펫을 깔고 발을 쭉 뻗거나 누운 자세로 콜라나 맥주를 마시며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등 외국의 공포영화를 즐긴 이 심야극장은 상영 일주일전에 예약이 끝나는 폭발적인 반응으로 주최측을 ‘떨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하필이면 한국의 공포영화일까. 심야극장 기획팀 이순진씨의 설명.

“공포영화는 저급하고 유치하지만 그런만큼 동시대인의 집단의식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공포영화 역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나 가족제도의 분열 등 풍부한 사회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다.”

한국 공포영화에는 유난히 여자귀신들이 많다. 남자귀신이래봤자 총각인 몽달귀신정도.

억울하게 죽어 한을 잔뜩 품은 여자귀신들은 수백년동안 이어져온 가부장제의 억압을 온 몸으로 폭로한다.

얼마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덴마크 영화 ‘킹덤’ 덕택에 심야상영 방식은 이미 낯설지 않다. 심야극장은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제의(祭儀)에 참석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문화체험 공간이다.

한 배에 탄 사람들처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웃음으로 몇시간을 보낸뒤 인적없는 희뿌연 새벽거리로 나서는 그 기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한국공포영화축제 하룻밤 입장료는 1만원. 그러므로 자신이 다음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면 아예 볼 생각을 말 것.

첫째는 ‘영화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함께 소리지르고 웃으면서 ‘영화와 논다’는 생각이 없으면 기가 막혀 못본다. 둘째, 영화의 줄거리를 중시하는 사람. 공포영화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재연하는 판타지’인 영화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줄거리 뿐만 아니라 영화적 장치도 눈여겨 보는 관객이어야 장장 5∼7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 02―324―6758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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