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국민대토론 요약]「소유 경영 철저분리」

  • 입력 1998년 4월 13일 08시 10분


《강도높은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의 소리가 높았다.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재벌개혁의 속도와 강도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재벌 기업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과연 개혁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게 압도적인 여론이었다. 한국방송공사(KBS)가 11일 밤∼12일 새벽 생방송으로 내보낸 ‘한국 이렇게 바꿉시다―재벌개혁편’의 토론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사회자(나형수·羅亨洙 KBS전해설위원장)〓한국의 재벌은 과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나 최근에는 경제위기의 가장 큰 책임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재벌들은 공과를 떠나서도 살아남기 위해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유승민(劉承旻·토론자)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지금은 외환 금융 기업의 복합적인 위기국면이다. 현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쟁력있는 기업 △은행다운 은행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정부 등 3박자가 맞아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재벌의 1인 경영체제와 족벌세습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재벌총수를 봉토를 가진 영주나 왕족에 비유한다. 경영능력이나 자질과는 무관하게 단지 소유했다는 이유로 재벌총수들이 경영을 장악, 경영이 비효율적이고 비전문적으로 이뤄진다. 소유와 경영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서울지부 사무국장〓우리나라에서는 총수의 가족회의가 기업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가족회의란 본래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

▼서울 석촌동에 사는 주부〓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자식을 키워 정계로 보내자는 말이 유행이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외이사로 힘있는 정관계인사를 영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쉽게 이권을 따내기 위한 것이다. 기업경영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

◇ 소액주주 권한 확대를 ◇

▼강서구청 공무원〓기업의 오너가 경영을 맡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투자를 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가 경영에 참여했다가 무리한 사업확장을 시도, 경영위기에 봉착한 사례가 많다. 소액주주의 권한을 확대하고 책임경영제를 정착시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

▼유연구위원〓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자를 제대로 감시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전국금융노련 정책부장〓재벌들은 ‘우리가 망하면 한국경제가 망한다’는 논리로 정부에 손을 벌린다. 이같은 재벌의 논리에 현혹돼선 안된다. 부실기업을 가차없이 구조조정한다면 중소기업도 육성하고 실업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앤더슨컨설팅 직원〓재벌기업들은 재계순위를 높이기 위해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수단을 주로 사용했다. 이를 위해 수익성이 높은 계열사가 수익성 낮은 기업에 자금 등을 지원, 발목을 잡혔다. 산업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그룹 기획조정실이 핵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인〓재벌기업이란 ‘돈 많은 기업’이 아니라 ‘빚 많은 기업’이다. 대기업이 부도를 내 중소기업이 돈을 못받아도 대기업 대표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재벌 기업들의 재무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속사정만이라도 좀 알고 싶다.

▼청주의 한 자영업자〓금융기관을 재벌이 사금고화해 건전한 중소기업은 자금지원을 받지 못한다. 우리 회사는 95년7월 부도가 났는데 근로자들이 힘을 합쳐 회사를 살려냈다. 그런데도 아직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못받고 있다. 한보그룹은 2조원의 담보로 8조원을 대출받았다. 금융권을 개혁해야 한다.

▼사회자〓오너의 전횡이 너무 심하다는 국민의 지적에 대한 전문가 견해는.

▼유한수(兪翰樹·토론자)포스코경영연구소전소장〓창업주들은 공이 많다. 이들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던들 지금의 자동차나 조선산업이 어떻게 생겨났겠는가. 다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최정표(崔廷杓·토론자)건국대경제학과교수〓현재의 사외이사제도로는 재벌총수를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소액주주나 근로자대표 등이 사외이사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계 OCS엔지니어링 기획팀장〓지금은 정부가 재벌을 보호하지 말고 그 재원을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재배분해야 한다.

▼앤더슨 컨설팅 직원〓대기업의 경제력집중 때문에 전산업분야가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이 핵심사업이 아닌 것은 정리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빅딜도 필요하다.

▼사회자〓경제력 집중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어느 정도이고 해소방법은 없는지.

▼최교수〓우리나라는 소수의 대재벌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 정치 문화 스포츠까지 재벌 의존적이다. 재벌이익에 반하는 국가정책은 추진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려면 그룹을 해체하고 독립기업 단위로 경영하게 해야 한다. 또 상호지급보증이나 상호출자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유연구위원〓지배구조를 바꾸고 금융을 개혁해야 경제력 집중의 폐단을 해소할 수 있다.

▼유전소장〓재벌비판에는 잘못된 시각이 많다. 재벌기업의 빚이 많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벌에 유리한 제도가 문제다.

▼사회자〓지금까지 나타난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교수〓새 정부 출범후 재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아직 안나왔다.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통제나 간섭, 지시로는 안된다. 입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만이 장기적인 효과를 낳는다.

▼사회자〓문어발식 경영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유연구위원〓문어발식 경영의 주된 이유는 퇴출이 없는 경쟁 때문이다. 망하는 기업은 없고 새 기업은 계속 들어온다. 사업다각화 대신 전문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한국기업은 아직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 정부가 무작정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해소해야 한다.

▼우진택시 직원〓구조개혁은 인식을 바꾸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울도곡중 교사〓재벌들이 스스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정경유착이다. 권력의 입김이 너무 세 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 상호출자 고리 끊어야 ◇

▼사회자〓정경유착의 실상과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이 말해 달라.

▼최교수〓정경유착의 실상은 아주 비밀스럽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비자금사건 등에서 일부가 드러났다. 이는 재벌만의 탓은 아니다. 정치권이 더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비자금을 만들 수 없게 경영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유전소장〓부패문화는 정경유착만이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부패문화가 문제다. 교사의 촌지나 판사 비리가 이를 말해준다. 부패문화가 생겨나는 근본원인은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돈 안드는 정치제도를 만들고 규제를 없애야한다.

▼부천에 사는 주부〓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인들의 스캔들도 호된 비난을 받는다. 그런데 재벌총수나 자제들이 스캔들을 일으켜 일반인들의 삶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키는 일이 적지 않다.

▼OCS엔지니어링 기획팀장〓국가가 더 이상 재벌기업을 후원해선 안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움직여야 한다.

▼사회자〓재벌총수의 스캔들이나 공인으로서의 윤리문제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유전소장〓재벌총수들이 팽창주의와 매출제일주의 때문에 공인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유연구위원〓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 정부의 관계를 ‘근친상간’관계라고 표현했다. 서로 본분은 다 못하면서 국가는 기업을 걱정하고 기업은 애국을 한다고 설쳤다. 기업에 지나친 윤리를 강조해서는 안된다. 본분을 다하도록 해야한다.

▼최교수〓내부거래의 부작용이 많다. 내부거래는 시장질서를 파괴하고 총수의 부를 세습시키는 편법으로 활용된다. 이를 정책적으로 단속해야 하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문제다.

▼전북여성운동연합 상임의장〓재벌개혁의 목소리는 갈수록 낮아지고 실직자 등 근로자들의 비명소리는 높아간다. 정부는 대문은 활짝 열어놓고 쪽문만 단속한다. 재벌개혁 의지가 의심스럽다.

▼충북연대 공동대표〓재벌은 국민에게 빚진 심정으로 기업을 경영해야한다. ‘재벌이 경제의 질곡’이라는 비난을 더 이상 받지 말아야 한다.

▼중소기업인〓지금까지 어렵고 돈남지 않은 장사는 중소기업이 모두 떠안았다. 그나마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대기업들이 뺏어갔다. 협력업체라고 협력해준 적은 한번도 없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자선단체가 나눠주는 한끼 식사를 받기 위해 늘어선 실업자 행렬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누구의 희생과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인가. 노동비용이 너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야 하나. 노동은 상품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다.

◇ 외국투자 유치도 중요 ◇

▼최교수〓그룹경영이 지배하는 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방지하기 어렵다. 대기업들은 자금여유가 생기면 수직적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보다 계열사를 지원한다. 재벌제도가 구조적으로 개혁돼야 중소기업들이 보호받는다.

▼유연구위원〓한국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기업이 투자하면 자본과 경영노하우 기술이 함께 들어온다.

▼회사원〓재벌의 경영관행중 언론을 소유하는 것도 큰 문제다. 재벌언론들이 진실을 덮어둘 때가 많다. 언론은 비리를 정확하게 파헤쳐 국민들이 모두 알게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정치권이나 기업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재벌의 언론소유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사회자〓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잉중복경영을 해소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지적이 많았다. 이중 가장 긴급한 과제를 전문가들이 제시해달라.

▼유연구위원〓정치권과 관료를 쳐다보지 않아도 기업경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최교수〓단기적으로는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고 개별기업단위의 독립경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소유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유전소장〓재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지금 재벌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고 그들이 만든 옷과 자동차를 입고 탄다. 요컨대 비판과 애정이 엇갈린다. 재벌이 미운점도 많지만 한국경제를 끌고 가야할 견인차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정리〓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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