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사동을 살리자

  • 입력 1998년 4월 12일 2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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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문화의 거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일대에 화랑 고미술점 공예품가게 등 문화업소가 현저히 줄어들고 술집 등 유흥업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문화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문화관계자들의 우려 속에 이 지역 문화업소 상인들까지 나서 문화특구 지정 등 근본적인 보호대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인사동의 문화업소들은 지난해 말 이후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타격을 받고 대부분 경영난에 빠져 있다. 문을 닫는 업소가 늘어나고 영업을 하더라도 집세가 싼 골목 안쪽으로 규모를 줄여 이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바깥쪽 거리에는 술집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심지어 전자오락실까지 들어서 채산성 높은 유흥 오락업종으로 재편성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인사동의 ‘얼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인사동 일대는 4백여개의 문화업소가 자리잡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문화명소다. 거리 곳곳에서 전통의 숨결과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일요일에는 ‘차없는 거리’로 지정돼 많은 시민들과 외국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데다 독특한 한국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점이 인사동의 자랑이다.

인사동 외에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 곳은 몇군데 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대학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85년 건전한 청년문화의 요람을 표방하며 문화의 거리로 출발한 대학로는 10년이 채 못돼 퇴폐 향락적 소비문화가 판치는 유흥가로 전락했다. 소비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를 노린 유흥업소들이 문화공간 사이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시당국이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도 같은 길을 걷는다면 우리 문화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면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의 거리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으로 입주업소들이 문화에 애착을 지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인사동에 입주해 있는 문화업소들은 85% 이상이 계속 문화의 거리로 남는 데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문화관광부나 서울시 당국은 더 늦기 전에 인사동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인사동 상인들이 원하는 대로 문화특구로 지정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문화업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행정이나 세제면에서 혜택을 주고 건물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문화업소에 임대해줄 경우 각종 세금을 줄여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문화의 거리는 일단 사라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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