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협상타결 표정]英-아일랜드 축제분위기

  • 입력 1998년 4월 12일 20시 31분


“역사의 무거운 짐이 우리의 어깨에서 내려지기 시작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타결된 10일 벨파스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민족적 종교적 갈등이 4백여년이나 계속되고 특히 지난 30년 동안 3천2백여명의 인명이 희생된 북아일랜드의 신구교도간 평화협정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세계에도 낭보였다.

영국과 아일랜드 국민, 특히 북아일랜드의 신구교도들은 평화협정 타결소식에 “부활절 최대의 선물”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번 협정은 양 진영 온건파들의 타협의 산물이며 무효화 투쟁을 하겠다”는 극단주의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북아일랜드의 평화정착은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평화협정체결〓협상을 중재해온 조지 미첼 전 미국상원의원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스토먼트성(城)에서 당초 시한인 10일 0시를 17시간이나 넘긴 오후5시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22개월간 끌어온 협상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가톨릭계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당수 등 각 정파의 협상대표들도 협상 타결을 확인했고 앞날에 대한 기대와 다짐을 밝혔다. 개신교계 최대 정당인 얼스터통일당(UUP)의 데이비드 트림블 당수도 “이번 협정은 결코 개신교 진영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협정 내용〓60여쪽에 이르는 평화협정은 북아일랜드 문제는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이 기본.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직접 통치를 끝내고 신설될 의회가 자치적으로 통치한다는 게 핵심사항.

주요내용은 △북아일랜드 의회 신설과 1백8명의 의원은 비례대표제로 선출 △남북아일랜드 각료평의회 설치 △북아일랜드에 대한 아일랜드와 영국의 법적인 영토권 조항 철회 △개신교도가 절대 다수인 경찰 개편 △무장조직의 무장해제 △테러혐의 수감자의 대거 석방 등.

▼향후 절차와 남은 과제들〓이번 평화협정은 다음달 22일 북아일랜드 국민투표에 회부되어 유권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일랜드에서도 북아일랜드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양국 투표에서 과반수의 반대가 나오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영국의회도 북아일랜드 의회에 대한 권한이양 승인 절차를 밟는다. 북아일랜드의 첫 의회선거는 6월중 있으며 각 정파의 의석분포에 따라 각종 위원회 위원장 및 각료직이 배분된다.

▼극단주의자들의 반발〓문제는 개신교 및 가톨릭계 무장조직의 동향. 가톨릭계 무장조직인 아일랜드공화군(IRA)과 급진파 아일랜드민족해방군(INLA) 일부에선 “평화협정이 아일랜드의 명분을 저버린 배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개신교 진영 무장조직인 ‘왕당파 의용군’도 가톨릭계 무장조직의 동향을 보면서 대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협상타결의 주역들〓평화협정의 주역은 블레어 영국총리, 어헌 아일랜드총리, 미첼 전 미국상원 등 3명. 블레어 총리는 협상 막판에 결렬될 우려가 나오자 벨파스트로 날아가 30시간 가까이 당사자들에게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역설했다. 어헌총리도 모친상을 당했으나 9일 영결식에 얼굴만 보인 뒤 곧 돌아가 협상장을 지켰다.

미첼 전미상원의원은 8개 정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최종 협정안을 직접 작성, 8개 정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낸 탁월한 조정자 역할을 했다. 95년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며 정계에서 은퇴했으나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설득으로 이 협상의 조정자역을 맡았다.

〈윤희상기자·벨파스트·런던AP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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