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도 구조조정시대(上)]『부조하다 부도날라』

  • 입력 1998년 4월 12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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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가슴 설레고 순결한 자리. 대놓고 ‘신문기자’랍시고 불경스럽고 몰상식한 ‘돈’얘기를 불쑥 꺼낼 수밖에 없는 마음을 먼저 헤아려 줬으면. 하지만 솔직하게 따질 건 따져보자.

‘결혼 축의금’이 오가는 우리네 풍경. 이것 때문에 웃지도 울 수도 없는 온갖 사건이 벌어진다. 축의금에는 ‘소비자희망가격’이 없어서라나.》

회사원 K씨(35). 친구 친척 회사선후배 간부 등 수많은 경조사 때마다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분수에 맞게 한다지만 딱히 기준이 없어 답답하다.

축의금도 1만원에서 수십만∼수백만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받을 때는 흐뭇하지만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할 때는 부담스럽다. 사랑과 비슷한 논리. 결혼식장에서는 종종 신랑 신부측이 축의금을 놓고 경쟁심을 발동하기도 한다.

IMF한파에 주머니 사정은 궁한데다 결혼 시즌이 겹치면 축의금 부담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축의금은 대부분 곧 백일 돌잔치 같은 또다른 돈봉투를 부른다.

‘축의금 딜레마’로 고민하다 동아일보에 상담전화를 걸어오는 독자들도 있지만 ‘이거다’하는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D생명의 샐러리맨 O씨(30)의 하소연. “한 주 걸러 축의금을 내다가 요새는 아예 한 주에 이탕 삼탕까지 뜁니다. 흰봉투는 필수품입니다.”

요즘 대기업의 사내 전자우편망에는 ‘결혼식에 와달라’는 메시지가 수북하게 쌓인다. “결혼철에 전자우편 확인하기가 무섭다”고 사원들이 말할 정도. 도대체 축의금제도는 왜 생겼을까.

축의금의 뿌리는 우리네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에서 비롯된 것. 마을 사람들끼리 경사가 난 집에 돈이나 쌀 같은 것을 모아주는 풍습이 시초다.

20세기말 대한민국. 축의금의 이데올로기는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는다’는 뜻. 혹자는 ‘사회보험’이나 ‘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축의금 보존의 법칙’은 주고 받는 시기와 대상이 제각각이라 잘 지켜지지 않는 법. 독신자의 경우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수 없고 재혼자에게는 축의금을 두번 주게 된다.

축의금에 따른 사람 유형도 가지가지.

‘축의금은 손해’라는 사회봉사형. 일찍 결혼한 사람이거나 독신주의자다. 입사 전이나 학생 때 결혼해 회사선후배나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못받거나 사회 통념상 평균에 못미치는 돈을 받았다.

그렇다고 당시와 같은 액수를 축의금으로 내거나 안준다면 ‘쩨쩨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그럴 바에는 스스로 사회봉사가임을 자처하고 축의금을 더 내겠다”는 게 이들의 주장.

J씨(30·S증권 근무). “대학 4학년 때 결혼한 탓에 당시 학생인 친구들에게 축의금을 거의 못받았다. 하마터면 결혼이 부도날 뻔 했다.”

기브 앤드 테이크 이념에 투철한 ‘대차대조표형’. 주고 받는 모든 축의금 거래내용(?)을 철두철미하게 기록해 두는 타입. 이런 사람에게 받은 축의금을 제때 챙기지 않는 사람은 ‘파렴치한’으로 몰릴 수 있으니 요주의.

‘무심형’. 주는 대로 받고 있는 만큼 주는 사람. 낙천적인 만큼 편할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축의금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이기 때문. 상대방이 무심형의 무원칙에 때때로 당혹해 한다.

‘장소선별형’. 호텔이나 고급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에는 가능한 한 안가고 성당 교회 구민회관일 때만 가는 부류. 비싼 곳에 가면 축의금도 더 내야 하기 때문.

어쨌든 축의금딜레마의 시대.

〈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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