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강신/『미정아빠,용기 잃으면 안돼요』

  • 입력 1998년 4월 10일 06시 43분


엊그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정 아빠의 실직 소식이 들려 왔다. 미정이네는 92년 우리와 함께 아파트에 입주한 인연으로 늘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

미정아빠는 나를 친형처럼 따랐다. 직장이 있는 목포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은 물론 나에게도 안부전화를 자주 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올라올 때면 목포의 해산물을 한아름 들고와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을 키웠다. 때로는 노래방도 함께 가고 보리밥 외식도 함께 했으며 집안의 대소사도 함께 걱정했다.그런데 미정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잘린’ 것이다. 오직 회사와 가족밖에 모르던 성실하고 착한 가장이었기에 안쓰럽고 딱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아내에게 부탁했다. “여보, 오늘 점심을 좀 푸짐하게 장만해서 미정이네와 함께 먹지. 미정이네가 통 보이지 않아. 얼굴이라도 좀 보게. 크게 신경쓰지 말고 우리 먹는대로….” 그러자 아내도 “글쎄요. 그러잖아도 연락이 없어 걱정했어요”라며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일요일 점심에 집에 모였다. 미정이네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고맙게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약주도 한잔 했다. 술이 거나해진 미정아빠는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미정아빠는 “형님, 고맙습니다. 걱정마세요”하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한 평생을 띠그래프로 생각할 때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남았을까. 인생은 정말 나그네가 걸어가며 겪는 여정과 같다. 걷다보면 들도 지나고 산도 지나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만나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만 만나고 좋은 일만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럴 수만 없는게 인생이 아닐까.

미정아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사노라면…’이라 하지 않았던가요. 인생은 나그네 길과 같은 것. 걷다가 힘들거든 쉬었다 가고 갈만하거든 또 힘차게 걸어갑시다. 살다보면 좋은 일이 틀림없이 생길 것입니다.

이강신(경기 안양시 부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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