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미국의 「안보세일즈」

  • 입력 1998년 4월 9일 19시 55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가장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느 나라일까. 물론 일차적으로 우리의 국가안보가 문제다. 그대로 있다가는 당장 남북간 군사력 균형이 깨져 전쟁 없이도 백기(白旗)든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북한의 핵무기 앞에 한국이 살 길은 두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핵무기 독자개발로 ‘공포의 균형’ 전략을 꾀하거나 미국 핵우산에 의탁하는 ‘절름발이 주권국’ 처지가 되는 것이다.

▼8일 미 국무부의 피커링차관으로부터 북한에 줄 중유비 분담을 요청받은 한국정부 당국자들은 아연했다. 94년10월 제네바에서 미국은 북한측에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두가지를 약속했다. 핵에너지 대체용으로 중유를 지원하고 경수로를 건설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중 돈이 많이 드는 것은 경수로다. 클린턴 미행정부는 경수로 비용을 한국측이 대부분 부담하는 대신 미국이 중유를 전담하겠다고 했었다.

▼경수로의 경우 당시 한미 양국은 “한국의 중심적 역할에 걸맞은” 분담에 합의했다. 국제정치에서 중심적 역할이란 경제력과 정치적 발언권 등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란 순전히 북한의 핵으로 인한 안보위협방어 분담비율이다. 한국의 분담비율은 대략 3분의 2로 이해됐다. 피커링은 이것도 70%선이라고 올려잡았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친서로 그렇게 약속했다는 얘기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 일본도 핵보유 명분을 가지며 다음엔 일본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핵무기 증산, 중국의 라이벌 인도, 인도의 인접 분쟁국 파키스탄… 순으로 연쇄반응이 확산된다. 미국은 91년말 한국정부측에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내놓게 했다. 북한의 핵앞에 한국이 검토할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없애버린 셈이다. 중유비용 분담요청 때문에 이런 볼멘 목소리까지 나온다는 사실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김재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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